양정철 민주연구원장(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윤후덕 의원, 이근형 전략기획위원장이 30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당사에서 열린 더불어시민당 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범여권 비례연합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이 총선용 10대 공약을 공개했다가 하루도 되지 않아 철회했다.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한반도 이웃국가 정책으로 대체’ ‘전 국민에게 무조건적인 기본소득 60만원 지급’ 같은 일부 공약이 정부 여당의 정책 기조와 충돌한다는 논란에 휘말렸기 때문이다. ‘플랫폼 연합정당’을 표방하며 급조한 가설 위성정당의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민당은 31일 오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정책·공약 알리미 페이지를 통해 10대 정책을 공개했다. 여기에는 문재인 정부 대북 정책의 기본틀인 ‘민족공동체 통일 방안’을 ‘한반도 이웃국가 정책’으로 대체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시민당은 공약 자료에서 “민족·국가 단위 중심의 통일 패러다임을 벗어나, 북한을 이웃국가로 인정해 국제사회의 행동기준과 원칙을 남북관계에 적용해야 한다. 평화를 위협하는 행동에는 모든 수단으로 총대응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는 부연설명이 달렸다. 이 공약은 시민당에 참여한 시대전환이 제안한 것으로 확인됐다.
‘탄소세·토지보유세 등을 부과해 전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겠다’는 공약도 논란이 됐다. 정부 여당의 조세·복지 정책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이 공약은 기본소득당의 요구를 수용해 만들어졌다.
이 공약들에 대한 여권 지지층의 비판이 잇따르자 시민당은 이날 오후 입장문을 내어 “31일 선관위에 등재된 10대 공약은 플랫폼 정당으로서 여러 소수정당과 논의할 때 기계적으로 취합한 정책들로, 자원봉사자가 선관위에 접수하는 과정에서 행정 착오로 접수했다. 더불어시민당의 정체성에 걸맞은 공약을 다시 올리겠다”고 수습에 나섰다. 비례대표 정당의 정체성과 다름없는 ‘10대 공약’이 선관위 제출 시한을 앞두고 졸속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셈이다.
시민당이 소수정당·시민사회가 함께하는 ‘플랫폼 연합정당’을 표방했지만, 본질은 민주당의 ‘꼭두각시 정당’이란 사실을 스스로 폭로했다는 쓴소리도 나온다. 시민당에 참여하는 한 소수정당 관계자는 “행정 착오라는 것은 뻔뻔한 변명이다. 시민당에 참여한 모든 정당 관계자가 나와 10대 공약에 들어갈 주요 정책을 논의했다. 그 자리엔 민주당 관계자도 있었다”고 배신감을 토로했다. 민주당 지지층이 반발하면 소수정당의 요구를 담아 만든 공약은 언제든 철회할 수 있다는 위성정당 기획자들의 속내가 확인됐다는 얘기다.
정치개혁의 명분과 가치를 거스르며 급조한 위성정당에 대한 우려가 현실화하면서 유권자들의 혼란만 가중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유권자들은 정당에 대한 정확하고 충분한 정보가 있을 때 합리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 시민당이 어떤 정당인지 그 정체와 지향성이 불분명하다면 유권자들의 혼란이 가중되고, 정치적 선택도 왜곡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황금비 이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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