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4일 청와대에서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집권 4년차 진입을 앞둔 문재인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는 탄탄하다. “처음으로 레임덕이 없는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올 정도다. 그러나 그 앞에 높인 길은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이다. 문 대통령 스스로 ‘대공황 이후 최악’이라고 이름 붙인 코로나19 위기를 넘어서야 한다. 세계적인 경기침체를 뚫고 성장을 방어하면서, 절벽에 놓인 경제 약자를 묶어 담는 사회안전망도 확장해야 한다. 위기는 전례 없지만, 정치적 조건은 역대 어느 정권의 4년차 때보다 좋다. 남은 임기 2년 동안 문재인 정부가 집중해야 할 주요 과제를 전문가 인터뷰를 통해 정리했다. 문 대통령은 오는 10일 오전 11시 청와대에서 코로나19 이후의 국정 과제를 국민에게 설명하는 특별연설을 할 예정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그동안 우리가 쌓아 올린 사회안전망이 얼마나 부실한 것이었는지를 여실히 드러냈다. 바이러스는 차별 없이 인간을 공격했지만, 그에 따른 실업과 소득단절의 재난적 고통은 불평등하게 배분됐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는 집권 4년차 문재인 정부의 고민은 성긴 안전망 밖에 있는 이들의 고통을 어떻게 감싸안을지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오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사태가 남긴 고통의 양상에 주목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강조했다. 정이환 서울과학기술대 교수(사회학)는 “코로나19 사태로 누가 재난적 위기 상황에서 가장 큰 어려움을 겪는지 드러났다. 코로나19 이전까지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진짜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제도 설계에 나설 때”라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 초기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었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최저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 등 정책 이슈들이 완강한 반대에 밀려 속도를 내지 못하는 지금, 정책 사각지대에 있던 이들을 포괄할 수 있는 사회안전망 강화에 정책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는 뜻이다.
여당도 고용보험 가입 대상을 취업자 전원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물밑에서 논의하고 있다. 3월 기준 2800만명 가까운 경제활동인구 가운데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1300만명(자영업자, 특수형태근로종사자, 플랫폼 노동자 등)을 그 울타리 안에 넣겠다는 것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기술 발전 등으로 전통적인 고용 관계가 변동하는 지금, 프리랜서·특수형태근로종사자 등 일부 직역을 고용보험 특례 가입 대상으로 포함시키는 소극적 대응으로는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더구나 코로나19가 촉발한 ‘언택트 경제’(비대면 경제)의 발전은 플랫폼 노동으로 대표되는 비정형 노동을 더 확산시킬 가능성이 크다.
전문가들은 고용이 아닌 소득을 바탕으로 한 고용보험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전병유 한신대 교수(경제학)는 “고용보험 확대 논의가 20년 가까이 진행돼왔지만, 골프장 캐디 등 몇몇 업종에 가입을 허용하는 정도까지밖에 진전을 못 했다”며 “고용의 형태와 관계없이 모든 일하는 이의 소득을 보장하게 된다면 대단한 성과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승윤 중앙대 교수(사회복지학)는 “노인 계층에 대해서는 국민연금, 기초연금, 기초생활보장제 등 다층 구조로 소득 보장의 사각지대를 최소화하고 있다”며 “고용보험 확대와 함께 20대 국회에서 논의됐던 한국형 실업부조까지 도입해 일하는 연령대의 소득 보장에도 다층 구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보건과 돌봄 영역에서 공공성을 강화하는 것도 숙제다. 한국의 코로나19 방역이 눈에 띄는 성공을 거둔 데는, 공공성이 강한 건강보험 재정을 바탕으로 한 의료 시스템의 역할이 컸다. 다만 공공의료의 공백지였던 경북 등 외곽 지역과 노인요양시설 등은 방역의 취약지대로 노출됐다. 이승윤 교수는 “급격한 고령화가 이뤄지면서 노인요양 등 보건 영역의 상당 부분이 사실상 시장에 외주화된 상황”이라며 “코로나19로 취약성이 나타난 이상,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보건과 돌봄 영역에서도 공공성을 강화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문재인 정부는 사회서비스원 설립 등을 통한 ‘돌봄의 공공화’를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20대 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통과되지 못해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세계 경제 질서의 재편에 발 맞춰 생산성을 높이고 일자리를 만드는 일에도 힘을 쏟아야 한다. 한국은 지난 10여년 동안 중국을 중심으로 한 제조업 분업 체계를 완성함으로써 양적 성장을 강화한 바 있다. 코로나19로 이런 글로벌 가치사슬이 약화되는 기조에 잘 적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경제학)는 “경제 질서의 전환기에 있기 때문에 정부가 산업 보호의 필요성과 구조조정을 통한 생산성 강화를 세심하게 조정해야 한다”며 “사회안전망 강화를 통해 혁신 성장을 위한 경제 주체의 도전을 이끌 수 있도록 선순환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린 뉴딜’을 통한 새로운 사회적 합의를 해법으로 제시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은 “문재인 정부가 제시한 한국형 뉴딜 사업에 판에 박힌 에스오시(SOC·사회간접자본) 대신 ‘그린 뉴딜’을 적극적으로 채워 넣어야 한다”며 “화석에너지 저감과 도시 환경의 전환 등 거대한 구조 변화로 새로운 사회·경제적 질서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장도 “그린 뉴딜이 멀리 떨어진 이야기 같지만, 이미 일본 같은 나라도 에너지 저감을 위한 스마트 그리드 분야에 대규모 재정을 투자해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며 “보건·의료, 돌봄의 공공성 강화와 함께 소프트웨어 투자, 에너지 전환 등 ‘그린 뉴딜’이야말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적합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분야”라고 짚었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