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가 1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고 박원순 서울시장 성추행 의혹과 관련해 피해자에게 사과하는 동안 김태년 원내대표가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민주당은 선출직과 고위 당직자에 대한 성인지 교육을 체계화·의무화하는 데 다시금 박차를 가하겠다.”(4월27일 최고위원회의)
“당 구성원의 성인지 교육을 강화하는 당규 개정하겠다. 다시 한번 국민 여러분에게 깊은 사과의 말씀 드린다.”(7월15일 최고위원회)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오거돈 부산시장이 시청 직원 성추행 의혹으로 사퇴한 지 석달도 안 돼 같은 내용으로 다시 한번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대표는 15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에서 고 박원순 서울시장 성추행 의혹과 관련해 “당 대표로서 너무 참담하고 국민께 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다. 다시 한번 국민 여러분께 송구하단 말씀 드린다”고 밝혔다. 대변인에 의한 ‘대리 사과’ 논란이 불거진 뒤 이틀 만, 사건 발생 엿새 만에 내놓은 늑장 사과다.
이 대표는 이어 “민주당은 피해자 중심주의를 견고하게 지켜왔다. 이 사안도 마찬가지로 피해자 입장에서 진상규명이 당연하지만, 당으로서는 현실적으로 진상조사가 어렵다”며 “피해 호소인의 뜻에 따라 서울시가 사건 경위를 철저히 밝혀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피해 호소인에 대한 근거 없는 비난을 멈추고 당사자의 고통을 정쟁과 여론몰이 수단으로 활용하지 않을 것을 다시 한번 간곡하게 부탁한다”고도 했다.
이 대표는 후속 대책으로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를 대상으로 하는 감찰기구 설립과 성인지 교육 강화를 위한 당규 개정을 지시했다. 당 관계자는 “현재 윤리심판원은 ‘머리’만 있는 조직이다. ‘손발’ 역할을 하는 기동대를 만들라는 취지”라며 “감찰 대상은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될 것 같다”고 설명했다.
당 대표가 직접 사과하자 당 대표 도전을 선언한 이낙연 의원도 입장을 냈다. 그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피해를 호소하시는 고소인의 말씀을, 특히 피해를 하소연해도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다는 절규를 아프게 받아들인다”며 “국민께서 느끼시는 실망과 분노에 공감한다”고 밝혔다. 이어 “피해 고소인의 보호에 최선을 다하겠다. 고소인과 가족의 안전이 지켜지고 일상이 회복되도록, 경찰과 서울시 등이 책임 있게 대처해주기 바란다. 민주당도 역할을 다하겠다”며 “관련되는 모든 기관과 개인이 진상규명에 협력해야 한다. 민주당도 최대한 협력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뒤늦게 적극 수습에 나섰지만, 당 대표가 공식 사과를 미루는 사이 당내에서는 2차 가해성 발언들이 이어졌다. 서울시 행정1부시장 출신인 윤준병 의원은 지난 13일 “시장실 구조를 아는 입장에서 이해되지 않는 내용들이 있었다. 침실, 속옷 등 언어의 상징조작에 의한 오해 가능성에 대처하는 것은 남아 있는 사람들의 몫”이라며 “박원순 시장님은 누구보다 성인지 감수성이 높은 분이셨다고 기억한다”고 적어 ‘가짜 미투 의혹을 제기했다’는 논란을 샀다. 서울시 정무부시장 출신 진성준 의원도 “피해를 기정사실화하고 박 시장이 가해자라고 (규정)하는 것은 사자 명예훼손”이라며 “섣부르게 예단할 시점은 아니고 차분히 따져봐야 할 문제”라고 말하기도 했다.
지난 4월23일 오거돈 부산시장의 성추행 사건이 불거진 뒤에도 당이 후속 대책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왔다. 권인숙 민주당 의원은 이날 <시비에스>(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국회의원들이 처음 모여서 (5월) 워크숍을 할 때 이런 문제에 대한 강의나 토론이 한마디도 없었다”며 “지난 몇년 동안 발생해왔고, 또 오거돈 부산시장 사건이 있었는데도 우리(민주당)는 안 한다”고 꼬집었다.
김원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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