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 2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하기 위해 승강기를 타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임기를 마친 뒤
“국민에게 봉사할 길을 찾겠다”는 윤석열 검찰총장의 국정감사 발언을 두고 정치권의 여진이 25일 계속되고 있다. 엄격한 정치적 중립성이 요구되는 준사법기관의 수장이 현실정치 참여를 시사하는 발언을 내놨기 때문이다. 윤 총장의 발언에 여권은 즉각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여권 지도부의 한 의원은 이날 “윤 총장이 장관의 수사지휘권을 위법하다 언급하고, 정치에 참여하려는 듯한 발언을 하고도 자리를 지키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말했다. 청와대 관계자도 “그 누구보다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야 할 검찰총장이 그런 얘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현직 검찰총장이 정치색을 확실히 드러낸 만큼, 정치적 중립성 확보를 위해 마련한 검찰총장 임기 규정을 굳이 지켜줄 이유가 없다는 시각이다.
그러나 여당이 곧바로 윤 총장을 상대로 한 공세에 돌입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두차례나 수사지휘권을 발동하는 등 윤 총장과 극단적인 대립각을 세우면서, 국민 여론에도 피로감이 쌓인 상황이기 때문이다. 또 당내에는 윤 총장을 공격하는 과정에서 추 장관의 아들 휴가 논란과 조국 전 장관의 딸 표창장 논란 등 ‘내로남불’ 프레임이 다시 작동하지 않을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윤 총장을 물러나게 할 경우 당장 서울시장 보궐선거 등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당내에 많다”며 “윤 총장과 관련한 논란에 대해선 조용히 처리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다”고 전했다. 윤 총장의 정치 시사 발언에 대해 “검찰총장의 직분을 다하는 것이 곧 국민을 위한 봉사”라며 조용히 임기를 마칠 것을 요구한
민주당 공식 논평(23일 강선우 대변인)이 나온 데는 이런 기류가 작용하고 있다는 뜻이다.
윤 총장을 바라보는 야권의 시각도 복잡하긴 마찬가지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앞서 “검찰총장은 정치와는 담을 쌓아야 되는 사람인데 조금이라도 오해받을 수 있는 여지를 남긴 발언은 저는 잘못됐다고 본다”고 선을 그었다. 이날 한 중진 의원도 “본인 스스로 임기를 지키겠다고 한 상황에서 정치권이 왈가왈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현 상황에서는 조용히 지켜보는 게 맞는 태도”라고 말을 아꼈다.
그러나 당내에선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한 3선 의원은 “당 안팎에 주자군이 형성되지 않는 무기력한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에 반발하는 여론이 모일 수 있는 구심점이 형성된 것은 어쨌든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했다. 반면 다른 재선 의원은 “적폐청산을 진두지휘한 윤 총장에게 강하게 반발하는 비토 그룹이 당내에 여전히 존재한다. 그가 정치를 하더라도 우리 당과 함께 갈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했다.
정치권의 시선은 26일로 예정된 법무부·대법원 등에 대한 종합감사에 쏠린다. 종합감사에서는 윤 총장의 발언 수위가 높았던 만큼 추 장관 역시 거침없는 발언을 쏟아내며 윤 총장을 공격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노현웅 김원철 서영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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