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언론에 공개된 정부과천청사 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중회의실의 모습. 정부는 지난 2월 공수처 설립준비단을 발족, 관련 법령 정비와 사무공간 조성 등 공수처의 업무 수행을 위한 준비를 마쳤으나, 여야가 공수처 출범을 놓고 대립하면서 시한 내 출범하지 못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당의 최후통첩 시한을 하루 앞두고, 국민의힘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처장 후보 추천위원회’ 구성에 협력하기로 하면서, 공수처 출범을 가로막아온 걸림돌 하나가 제거됐다. 그러나 공수처가 순탄하게 출범할 것으로 예상하는 이는 많지 않다. 현행 공수처법 조항대로라면, 국민의힘이 선정한 처장 후보 추천위원 2명이 반대할 경우 누구도 처장 후보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공수처의 생과 사를 결정지을 본격적인 전투는 이제 시작됐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더불어민주당은 야당 추천위원의 비토로 처장 후보 추천이 계속 지연될 경우, 공수처법의 야당 비토권 조항을 고쳐서라도 반드시 공수처를 출범시키겠다는 입장이다.
■ 야당 “이르면 26일 추천…독소조항 고쳐야”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25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26일 전후로 공수처장 후보추천위원회 위원 명단을 제출하겠다. 무지막지한 여당이 법안까지 바꿔가면서 야당의 추천권을 빼앗아가겠다고 하니 추천위원을 선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추천위원 후보를 4명으로 압축한 상태인데, 임정혁·이헌 변호사가 유력하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국민의힘이 명단을 제출하면 국회의장이 이들을 위원으로 임명해 추천위원회를 꾸리게 된다. 민주당은 이미 지난 7월 여당 몫 추천위원으로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박경준 법무법인 인의 대표변호사를 선임했다.
하지만 추천위가 출범한다 해도 공수처 출범까지는 ‘산 넘어 산’이다. 공수처장 추천위는 위원장 1명을 포함해 7명(법무부장관·법원행정처장·대한변호사협회장, 여당 추천 2명, 야당 추천 2명)으로 꾸려지는데, 추천위가 공수처장 후보 2명을 추천하면, 대통령이 그중 1명을 지명하고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최종 임명되는 구조다.
문제는
추천위가 위원 6인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하는 구조라는 점이다. 국민의힘이 추천한 위원 2명이 한목소리로 반대하면 어떤 인물도 후보로 추천될 수 없다. 국민의힘 추천위원들의 ‘비토권’을 보장한 것이다.
문제는 야당 몫 추천위원으로 유력한 임정혁 변호사와 이헌 변호사는 모두 ‘강성 보수’로 이름이 높다는 점이다. 임 변호사는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장과 대검찰청 공안부장 등을 지낸 공안통으로 ‘구공안’의 막내 세대로 분류된다. 이 변호사 역시 리버럴 성향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에 맞선 우파 변호사 조직 ‘시민과 함께하는 변호사들’의 산파역을 맡는 등 법조계의 대표적인 보수 인사로 손꼽힌다.
국민의힘은 야당 몫 추천위원을 앞세워 공수처 출범을 저지하기 위한 ‘침대축구 2라운드’를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주 원내대표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공수처법의 독소조항 개정과 라임·옵티머스 특검 등을 함께 진행하자는 요구에는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 공수처법 개정 카드 다시 만지작
민주당도 경계의 시선을 늦추지 않고 있다. 최인호 수석대변인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수처장 추천을 의도적으로 지연시키는 도돌이표식 지연전술로 공수처 출범이 늦어져서는 안 된다. 야당이 추천할 추천위원이 ‘공수처 방해위원’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썼다. 민주당은 국민의힘이 계속 어깃장을 놓으면 ‘공수처법 개정안’ 카드를 다시 꺼낼 수 있다는 사실을 공공연히 이야기한다.
하지만 야당의 지연전술을 이유로 공수처법을 다시 고치는 것은 여전히 부담스럽다. 지난해 공수처법 강행처리를 앞두고 보수 진영이 ‘공수처는 대통령이 맘대로 할 수 있는 독재적 수사기관이 될 것’이라며 반대하자,
민주당은 ‘(비토권 조항 때문에) 여야가 동의하지 않는 이가 공수처장이 되는 건 불가능하다. 공수처는 대통령 맘대로 할 수 없다’며 반박해왔다.
민주당이 기대하는 것은 여론이다. 당 관계자는 “명분이 부족한 측면은 분명히 있지만, 국민의힘이 억지 주장을 펴면서 시간만 끈다면 여론도 공수처법 개정에 우호적으로 바뀌지 않겠냐”고 했다. 그는 “야당에 무작정 끌려갈 순 없다. 때가 되면 결단이 불가피한 순간이 올 것이다. 하지만 그 전에 추천위에서 잘 협상해서 처장 후보 추천이 이뤄지도록 하는 게 최선이다”라고 말했다.
김원철 노현웅 기자
wonchu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