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의원들이 10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야당의 거부권을 무력화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대안)이 통과되자 규탄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10일 오후 2시28분. 박병석 국회의장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개정안의 가결을 선포하며 의사봉을 두드렸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문재인 독재자!”라고 외쳤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손뼉을 치며 자축했다. 국무위원석에 앉아 있던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얼굴도 활짝 펴졌다.
전날 3시간가량 공수처법 개정에 반대하는 무제한토론(필리버스터)을 진행했던 국민의힘은 이날도 강경한 태도로 일관했다. 본회의에는 모든 의원이 공수처 출범이 민주주의 사망과도 같다는 의미로 왼쪽 가슴에 검은색 근조 리본을 달고 참석했고, 초선 의원인 강민국·최승재 의원은 본회의 1시간 전 국회 본청 중앙홀에 ‘민주주의의 죽음’을 뜻하는 삼베 상복을 입고 나타났다.
야당은 본회의 직전인 오후 1시20분에 당 비상의원총회를 열어 전략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주호영 원내대표는 의원들에게 “한 사람도 본회의장에서 이탈하는 일이 없도록 하자. 열일 제치고 오늘 내일 표결에 다 참여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수적 열세로 공수처법 개정안 등 쟁점 법안의 처리를 막기는 어렵지만, 본회의에 참석해 몇명이 반대표를 던졌는지 기록에 남겨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강민국 의원(왼쪽)과 최승재 의원이 10일 오후 국회 본청 중앙홀에서 상복을 입고 공수처법 통과 관련 규탄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본회의 표결 직전엔 여야 간 몸싸움이 벌어졌다. 본회의장 앞에서 공수처 반대 피켓 시위를 벌이던 국민의힘 의원들 쪽에서 민주당 의원들을 향해 “뻔뻔한 ××”라는 욕설이 터져 나왔다. 때마침 본회의장에 들어가던 정청래 민주당 의원이 반발하며 국민의힘 의원들과 충돌해 팔을 잡고 몸을 밀치는 몸싸움이 벌어졌다. 압도적인 찬성표로 공수처법 개정안이 통과되자 주호영 원내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공수처법을 만든 과정도 불법과 억지로 가득 찼지만, 개정 과정은 국민을 개돼지로 보지 않는 한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이 공수처법 개정안으로 문재인과 민주당 정권이 드디어 폭망의 길로 시동을 걸었다고 확신하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공수처법 개정안 통과 이후 대공수사권을 경찰로 이관하는 국가정보원법 개정안이 상정되자, 국민의힘은 다시 필리버스터로 맞섰다. 이철규 의원이 오후 3시15분께 첫 주자로 나섰고, 국회 정보위원회 소속인 조태용·하태경 의원 등이 토론자로 신청했다.
애초 야당은 민주당이 의석수의 우위를 이용해 필리버스터 종료 표결을 강행할 것으로 예상했다. 국회법상 재적 의원 3분의 1 이상이 국회의장에게 무제한토론 종결 동의를 제출하면 그로부터 24시간이 지난 뒤 재적 의원 5분의 3 이상이 찬성하면 토론을 종료시킬 수 있다. 하지만 민주당은 이날 오후 “충분히 의사표시를 보장해달라는 야당의 의견을 존중하기로 했다”며 필리버스터를 막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종결 동의를 제출하지 않는 한 12월 임시국회가 끝날 때까지 반대 토론을 할 수 있다. 김병기·홍익표 등 민주당 의원 4명도 국민의힘 의원들과 번갈아 무제한토론에 참여하기로 했다.
오연서 노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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