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석 국회의장이 13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국정원법 개정안에 대한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 종결 찬반 투표에서 찬성 180표로 토론 종결을 선언하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연합뉴스
“찬성 180표, 반대 3표, 무효 3표로 국가정보원법 무제한토론 종결 동의의 건이 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
6석짜리 정의당의 도움은 필요 없었다. 의결정족수 확보를 위해 ‘고집 센’ 군소정당들과 ‘4+1 협의체’를 만들어야 했던 수고로움은 아련한 옛 기억이 되어버렸다. 더불어민주당은 13일 국민의힘이 주도한 국회 본회의
무제한토론(필리버스터)을 강제 종료시켰다. ‘자매정당’인 열린민주당과 탈당 무소속 의원 등의 도움 만으로 이뤄낸 일이었다. ‘거여의 위력’을 확인시킨 순간이었다.
정의당이 이날 오후 정의당이 “본회의 안건에 대한 반대의견 또는 소수의견을 표현할 권리는 충분히 존중되어야 한다”며 종결동의 투표 불참을 선언했을 때만 해도 민주당 원내지도부는 불안을 감추지 못했다. 종결동의 안건 가결에 필요한 180표를 간신히 확보해놓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국회법은 재적 의원 5분의 3 이상이 찬성하면 무제한토론을 강제 종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강제종료 조항이 적용된 경우는 없었다. 이 조항이 작동할 수 있는 의석구조가 마련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박성준 원내대변인은 표결에 앞서 열린 의원총회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김영진 원내수석이 ‘181표 정도는 지금 맞춘 상태인데 한 분도 빠짐없이 투표에 임해주기 바란다’는 말과 함께 무기명 투표 방법을 자세히 안내했다”고 말했다.
오후 8시9분 박병석 국회의장은 “국정원법 무제한토론 종결 동의서가 제출로부터 24시간이 지났다. 의결정족수가 충족돼 무제한토론 종결 동의의 건을 무기명 투표로 표결한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103석)들은 모두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민주당은 구속된 정정순 의원을 제외하고 173표를 갖고 있었는데, 여기에 찬성 의사를 밝힌 열린민주당, 기본소득당, 시대전환 의원 표를 더해도 178표. 정족수를 채우려면 민주당 소속이었다가 탈당한 김홍걸, 박병석, 양정숙, 이상직 의원 가운데 최소 2표를 확보해야 했다.
투표에서 개표 완료까지는 30여분이 걸렸다. 찬성표가 정족수인 180을 꼭 채웠다. 국회 관계자는 “반대표는 모두 국민의당이 던진 것으로 보인다”며 “투표 종결에 찬성하려면 ‘가’라고만 써야 하는데 ‘가.’라고 써서 무효 처리된 표가 3표”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이 이탈표를 1표로 막는 데 성공한 셈이다.
민주당이 범여권 정당과 의원들을 끌어모아 ‘180표’를 확보한 것은 국민의힘 뿐 아니라, 정의당에도 뼈아프다. 지금과 같은 의석수를 갖고도 법안 처리와 협상 과정에서 쏠쏠한 영향력을 발휘했던 20대 국회에서와 같은 상황은 더이상 재연되기 힘들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지난주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심의했던 국회 정무위원회 안건조정위원회에서는 캐스팅보트를 행사해 뜻을 관철했지만, 직후 열린 전체회의에서 민주당은 정의당의 찬성으로 안건조정위를 통과한 법안 대신 자체 수정안을 올려 통과시켰다. 정의당 원내대표단이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를 찾아가 거세게 항의했지만, 버스는 이미 떠난 뒤였다.
그러나 이처럼 압도적인 의석 수를 통해 대다수의 입법과제를 마무리지었으면서도 민주당 분위기는 그리 밝지 않아 보인다. 슈퍼여당의 일방독주를 경계하는 ‘오만 프레임’이 작동하면서 최근 도드라지는 여권 지지율 하락세가 가속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민주당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의석 구도가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한 핵심 관계자는 “언제까지 의석 수만 믿고 국회를 운영할 순 없다”며 “다른 정당들과 합의를 이룰 수 있는 정치적 해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원철 서영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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