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길 의원이 24일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경선에서 예상밖의 낙승을 거둔 것은 계파별 투표 현상 속에서도 중도파 의원들의 지지를 이끌어 내는 데 성공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김 의원은 이날 경선에서 투표 참여의원 141명 가운데 88명의 찬성을 받아 49표를 얻는데 그친 배기선 의원을 39표 차로 눌렀다.
김 의원이 계파별 투표 현상 속에 중도파 의원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었다는 분석은 일단 경쟁자인 배 의원의 표 분석을 통해 반증될 수 있다는 게 당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배 의원이 얻은 49표 가운데 30표 가량은 김근태 상임고문을 중심으로 한 민평련 소속 의원들의 표일 것이라는 분석이 일반적이다.
민평련의 한 의원은 "민평련의 핵심 회원 30여명은 정동영 상임고문과 가까운 김 의원의 당선을 막기 위해 거의 모두 배 의원에게 표를 던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배 의원이 민평련의 표를 제외하고 얻은 나머지 15~20표는 평소 가깝게 지냈던 당내 중진과 중도파 일부에서 나왔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최근 민평련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참정연 소속 의원 가운데 5명 안팎도 배 의원에게 표를 던졌을 개연성도 있다.
뒤집어 보면 배 의원을 지지한 민평련과 일부 당내 중진, 일부 참정연 소속 의원을 제외한 88명이 김 의원에게 투표했다는 이야기다.
일단 김 의원이 소속된 바른정치모임을 비롯해 친 정동영계로 분류되는 의원들은 40명선에 달한다. 경쟁 상대인 민평련의 표가 흩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도 김 의원에게 몰표를 던졌을 개연성이 크다.
김 의원이 얻은 나머지 40여표는 중도파의 표로 보인다.
당초 중도파는 친화력을 장점으로 내세우는 배 의원을 지지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예측됐다. 이번 경선이 막판까지 초박빙으로 분석된 것도 중도파가 대체로 배 의원을 지지할 것이라는 전망이 설득력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도파는 결국 김 의원을 선택했다. 당내에서는 이날 경선현장의 분위기가 끝까지 마음을 결정하지 못한 중도파의 표심을 좌우하는 데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김 의원은 이날 경선에 앞서 정견발표와 질의응답 과정에서 분명하고, 알기 쉬운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성공해 배 의원보다 좋은 점수를 받았다는 평이다.
김 의원은 정견발표 첫머리에 "며칠전 7살난 아들이 스키장에 같이 가자면서 `선거에서 꼭 져야 돼요'라고 말했다"고 소개한 뒤 "아들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원내대표로서 당에 기여하고 싶다"며 지지를 호소했다.
한 번 일을 맡으면 사생활을 포기하더라도 목표를 이뤄내기 위해 노력한다는 자신의 성격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그는 2002년 후보단일화 협상 과정과 지난해 행정도시 이전 협상 등을 소개하기도 했다.
김 의원은 당선이 확정된 뒤에도 "아들을 달래는 것은 제 몫이다. 열심히 하겠다"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이에 비해 배 의원은 "우리당의 승리를 위해 국민의 희망을 담는 큰 배를 띄우겠다"며 통합과 소통을 강조했지만, 아들 이야기를 적절하게 활용한 김 의원의 연설에 비해 설득력이 떨어졌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였다.
또한 당내 일각에서는 배 의원이 대구 유니버시아드대회 광고로비사건에 연루돼 재판중이라는 사실이 배 의원 지지를 고려했던 중도파의 마음을 흔든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배 의원은 초지일관 억울하게 누명을 썼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배 의원이 주요당직을 맡는 상황에서 만의 하나라도 재판결과가 불리하게 나올 경우 당이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는 불안감이 확산됐다는 것이다.
한 의원은 "특히 중도파 초선 의원들이 배 의원의 재판에 대해 불안감을 느낀 것 같다"고 말했다.
고일환 기자 koman@yna.co.kr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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