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욱 초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처장 후보자가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장 후보자가 헌법재판소 연구관 시절 작성한 국외 연수보고서가 제출 시점보다 넉달 뒤에 열린 학술행사 내용을 포함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수 종료 뒤 60일 이내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는 헌재 규정을 맞춘 것처럼 보이기 위해 보고서 제출 날짜를 허위로 기재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이 나온다.
<한겨레>가 12일 김도읍 국민의힘 의원실에서 제출받은 김 후보자의 연수보고서 및 계획서 등을 보면 김 후보자의 전문화연수 기간은 2014년 12월31일부터 2015년 6월30일까지다. 계획서에서 김 후보자는 미국 버클리 로스쿨 부설 한국 법센터와 연방대법원 부설 연방사법센터에서 전문화연수를 진행하며 미국 헌법 재판 현황 등을 연구하겠다고 밝혔다. 김 후보자는 이후 연수기간이 끝난 뒤인 2015년 7월16일 보고서를 제출했다.
그런데 이 보고서엔 “버클리 로스쿨에는 2014년 봄에 한국의 정치적, 법적 제도 등을 연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설립된 Korean Law Center가 활동하고 있는데 2015.11.12.에는 한국법제연구원 원장과 실무진의 참석 하에 Korean Law Center와 공동으로 Current issues in Korean Law라는 주제로 Joint Conference를 개최하기도 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보고서 제출 시한 이후의 일정이 보고서에 포함된 셈이다. 그러나 헌재는 이같은 보고서에 적격 판단을 내렸다.
김 후보자는 2015년 상반기엔 버클리 로스쿨에서 연수를 받은 이후 하반기엔 현지에서 6개월 육아휴직을 사용했으므로, 이 컨퍼런스가 열린 시점에 미국에 체류 중이었다. 야당에서는 김 후보자가 실제로는 미국에서 돌아온 뒤인 2016년 연수보고서를 작성하면서 마치 보고서 제출 시한을 지킨 것처럼 날짜를 앞당겨 적었다고 의심하고 있다. 김도읍 의원은 <한겨레>에 “보고서에 기재된 제출 날짜 이후에 제출됐다고밖에 볼 수 없다. 사실이라면 명백한 조작”이라며 “김 후보자는 물론 결과보고서에 대해 적격 판단을 내린 헌법재판소 모두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 후보자의 연수계획서와 보고서를 대조해보면 방문연수 목적과 취지가 맞지 않았다. 그는 연구과제로 △판례법 국가인 미국에서 헌법재판을 어떻게 발전시켜왔는지 △헌법재판이나 인권보장에 관한 국제기준이 무엇인지 등을 적었다.
□ 김 후보자 국외연수계획서 중
3. 연구과제
○우리처럼 성문법 국가가 아닌 판례법 국가인 미국에서 헌법재판을 어떻게 발전시켜 왔는지
○연방제 국가인 미국의 경우 주 법원과 연방대법원이 어떻게 서로 역할을 분담하여 헌법재판을 해 왔는지
○헌법재판이나 인권 보장에 관한 국제기준이 있는지, 있다면 그 내용은 무엇인지 또는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4. 연수국가 및 연수기관
○ 미국 버클리 로스쿨 및 부설 Korea Law Center
○ 연방대법원 부설 Federal Jydicial Center(또는 캘리포니아주 대법원)
그러나 보고서의 내용은 김 후보자가 애초 연구과제로 삼았던 미국 헌법 재판 현황 등과 거리가 멀어 보인다. 보고서의 상당 부분은 연방사법센터에서 2015년 4월27일부터 5월16일까지 진행된 일정 소개와 그 과정에서 확인한 형사 및 민사 재판 동향 등으로 채워져 있었다.
□ 김 후보자 국외연수보고서 중
○ 청사 내 지하에는 구내식당이 있고 샌드위치나 햄버거, 샐러드 등 몇 개 음식점이 입점해 있어서 청사 밖으로 나가지 않고도 점심 식사를 할 수 있었고, 식당에서는 아침식사도 제공하고 있어서 편리했음.
(중략)
○ 도서관 오리엔테이션
- 연방사법센터는 도서관 시설도 비교적 잘 되어 있었는데 장서가 그리 많이 구비된 편은 아니었으나 웹사이트에서 on-line으로 볼 수 있는 자료가 방대하고 잘 되어 있는 편이었음.
(중략)
○ 연방사법센터에서는 연구 주제와 관련하여 American University Law School 교수인 Lia Epperson 교수와의 면담을 4. 30. 오후에 잡아 두었는바, 그날 갑자기 동 교수가 감기몸살 등으로 올 수 없다는 이유로 취소되었음.
(중략)
○ Judge Faccio는 특히 형사사건에 있어서의 technology의 중요성에 관해 강조했는데 예컨대 휴대폰 위치 추적의 경우 경찰 수사에서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는 것이고, 민사사건의 경우에도 요즈음 98%의 증거는 electronical form으로 되어 있다는 것임.
김 후보자는 보고서에 영문 문건을 첨부하였는데, 이 역시 전문화연수와 거리가 먼 내용이었다. 그는 보고서에서 “버클리 로스쿨에서는 헌법을 중심으로 하여 소송절차법이나 국제법 등 다양한 방면에 관한 강의도 수강하고 방대한 장서나 자료 등을 통한 연구 작업도 수행하였는바, 특히 제3차 헌법재판회의 결과와 관련하여 헌법과 국제법과 관련된 주제로 다음과 같이 정리한 아티클을 작성하여 본 연구결과보고서에 첨부하여 보고하고자 한다”고 적었다. 하지만 김 후보자가 언급한 제3차 헌법재판회의는 그가 한국에서 근무하던 시절인 2014년 9월28일부터 10월1일까지 서울에서 열린 행사다. 김 후보자는 당시 몇몇 언론에 이 행사를 소개하고 정리하는 내용의 기고를 쓴 바 있다. 연수 과제와도 무관하며, 연수 기간 및 장소와도 무관한 내용으로 보고서를 채운 셈이다.
앞서 김 후보자는 육아휴직 기간 버클리 대학의 방문연구원으로 계속 활동한 사실이 드러나 공무원 임용규칙 위반 논란이 일었다. 공무원 임용규칙에는 휴직자가 휴직 사유와 달리 영리업무 금지의무에 위반하는 등 휴직 목적 달성에 현저히 위배되는 행위를 하는 경우를 ‘휴직의 목적 외 사용’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 공무원 임용규칙
제91조의7(휴직의 목적 외 사용) 임용령 제57조의5에서 “법 제71조에 따라 휴직 중인 공무원이 휴직기간 중 휴직사유와 달리 ‘국가공무원 복무규정’ 제25조에 따른 영리업무 금지의무에 위반하는 등 휴직의 목적 달성에 현저히 위배되는 행위를 하는 경우”를 “휴직의 목적 외 사용”이라 한다.
□ 국가공무원 복무규정
제25조(영리 업무의 금지) 공무원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업무에 종사함으로써 공무원의 직무 능률을 떨어뜨리거나, 공무에 대하여 부당한 영향을 끼치거나, 국가의 이익과 상반되는 이익을 취득하거나, 정부에 불명예스러운 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그 업무에 종사할 수 없다.
1. 공무원이 상업, 공업, 금융업 또는 그 밖의 영리적인 업무를 스스로 경영하여 영리를 추구함이 뚜렷한 업무
2. 공무원이 상업, 공업, 금융업 또는 그 밖에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기업체의 이사·감사업무를 집행하는 무한책임사원·지배인·발기인 또는 그 밖의 임원이 되는 것
3. 공무원 본인의 직무와 관련 있는 타인의 기업에 대한 투자
4. 그 밖에 계속적으로 재산상 이득을 목적으로 하는 업무
방문연구원의 경우 영리 목적과 거리가 멀기 때문에 방문연구원 활동이 육아를 병행하기 현저하게 어려울 정도였는지에 따라 임용규칙 위반 여부가 판가름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법원은 육아휴직을 내고 로스쿨을 다녀 징계를 받은 경찰들이 낸 징계처분 취소 소송 여러 건에 대해서 ‘편법으로 휴직제도를 사용했다’거나 ‘로스쿨 학업이 육아와 병행하기 어렵다’ 등 이유로 징계가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다만 당시 김 후보자의 연수 비용 등은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김 후보자는 미국 국무부 산하의 풀브라이트 재단의 장학금과 헌재의 연수 비용을 받아 미국에서 체류했다. 김도읍 의원실이 헌재에서 제출받은 장학금 내역을 보면 김 후보자는 풀브라이트 재단에서 생활비 1만7870달러, 가족수당 2100달러, 주택수당 1800달러, 정착비 및 연구비 1875달러 등 총 2만3645달러와 함께 의료보험과 본인 항공권 실비를 지급받았다. 헌재에서는 학자금과 김 후보자를 제외한 가족 항공료 등 총 1천16만원을 연수 비용으로 지급했다. 헌재 관계자는 “외부 장학금을 받으면 헌재에서는 연수 비용 전체가 아닌 일부를 지급하도록 되어 있다. 김 후보자가 외부 장학금과 헌재 지원금을 중복 지급받은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오연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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