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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회·정당

‘박근혜 22년’ 확정…“통렬한 반성” 없는 사면 가능할까

등록 2021-01-14 17:37수정 2021-01-14 20:54

2017년 9월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모습. 연합뉴스
2017년 9월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모습. 연합뉴스

대법원이 14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뇌물과 직권남용 등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징역 20년형(새누리당 공천 개입 혐의 징역 2년까지 합해 22년)을 확정하자, 보수 야권에서는 구속 수감 중인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봇물 터지듯 나왔다. 사면을 위한 중요한 조건 가운데 하나인 대법원 최종 판결이 이뤄진 만큼, 통합 차원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결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핵심 지지층의 반대 여론에 부딪힌 여권은 두 전직 대통령의 반성과 사과가 우선돼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상고심 선고 공판이 열리는 14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지지자들이 석방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상고심 선고 공판이 열리는 14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지지자들이 석방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야권에선 사면론 봇물…공식 입장에선 거리 둬
이날 국민의힘에서는 ‘국민 통합’을 앞세워 사면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4선 김기현 의원은 페이스북에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조건 없는 사면, 국격을 지키기 위해 필요하다”며 “더이상 국민을 갈기갈기 찢는 분열의 리더십은 안 된다. 국가 품격 차원에서 보더라도 정치보복이 계속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친박근혜계’로 불리는 박대출 의원은 페이스북에 “너무나 가혹한 형벌”이라면서 “어쨌든 모든 사법절차가 끝났다. 이제는 자유를 드려야 한다. 조건 없는 사면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친이명박계’ 조해진 의원도 <한겨레>와 통화에서 “진정한 통합은 반대편에 있는 국민들까지 끌어안을 때 이뤄질 수 있다. 두 전직 대통령을 지지했던 국민들 뿐만 아니라, 국민의 분열을 끝내고 헌정사의 정상화를 위해서라도 대통령께서 결단을 내려야 한다”며 “계속 지지층만을 안고 갈지 아니면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할지, 이제 대통령이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증세 없는 복지’ 논쟁 등으로 박 전 대통령과 갈등을 빚었던 유승민 전 의원도 페이스북을 통해 “대통령은 사면을 결단하라”고 촉구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 헌법이 대통령에게 사면이라는 초사법적 권한을 부여한 의미를 생각해보기 바란다”며 “‘오로지 국민 통합, 나라의 품격과 미래만 보고 대통령이 결단할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의 공식 입장은 사면론에서 한발짝 떨어져 있었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두 전직 대통령의 과오는 집권 여당 전체의 과오”라고 대국민 사과까지 했던 만큼, ‘책임과 사과’ 쪽에 무게를 둔 것이다. 이날 국민의힘은 윤희석 대변인 명의 논평에서 “법원의 판결을 존중하며 국민과 함께 엄중히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이어 “불행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은 이제 우리 모두의 과제가 됐다. 국민의힘은 제1야당으로서 민주주의와 법질서를 바로 세우며 국민 통합을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원론적 입장을 밝혔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새해 인터뷰에서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을 언급하며 사면론에 불을 지폈다. 연합뉴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새해 인터뷰에서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을 언급하며 사면론에 불을 지폈다. 연합뉴스

여권, 지지층 반대 여론에 “통렬한 반성” 촉구
여권은 박 전 대통령에게 통렬한 반성을 요구했다. 신영대 더불어민주당은 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내어 “대한민국 역사에 치욕을 안긴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국민 앞에 사죄하라”며 “박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은 대한민국 헌법 제1조를 정면으로 부정했다. 사회 질서를 통째로 뒤흔들어 대한민국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치욕과 세계 민주주의사에 오점을 남겼다”고 밝혔다.

신 대변인은 이어 “국민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을 대신하여 국정을 좌지우지한 최순실이라는 비선 실세의 존재는 국민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이에 분노한 국민은 ‘이게 나라냐’라는 구호를 외치며 촛불과 함께 광장으로 나갔다”며 “국민의힘은 국민이 받은 상처와 대한민국의 치욕적인 역사에 공동책임이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늘 판결에 대한 박 전 대통령의 통렬한 반성과 사과만이 불행한 대한민국의 과거와 단절을 이룰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낙연 대표가 새해 초 언론 인터뷰에서 불을 당긴 사면론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담지 않았다.

여기엔 핵심 지지층 대다수가 두 전직 대통령 사면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앞서 한국갤럽이 지난 5~7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사면 반대(54%) 여론이 과반수를 점해 찬성(37%) 여론을 크게 앞질렀다. 특히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무려 75%가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박 전 대통령은 국민의 깊은 상처를 헤아리며, 국민께 진솔하게 사과해야 옳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면과 관련해선 “당이 ‘국민의 공감과 당사자의 반성이 중요하다’고 정리했고, 저는 그 정리를 존중한다”고 덧붙였다. 민주당은 앞서 이 대표가 제기한 두 전직 대통령 사면 필요성이 당 안팎의 논란을 일으키자 지난 3일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 “당사자의 반성이 중요하다”는 입장을 정리한 바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1일 청와대에서 신년사를 읽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1일 청와대에서 신년사를 읽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정치 이벤트마다 ‘사면론’ 불거질 듯
하지만 한번 불이 붙은 사면론의 불씨가 꺼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보수 야권에서 두 전직 대통령이 수년째 수감된 상황을 거론하며 사면을 지속적으로 요구할 가능성이 높고, 현 정부도 두 전직 대통령 사면이라는 첨예한 현안을 다음 정부로 넘기는 데 따른 부담이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새해 기자회견, 4·7 재보궐선거, 차기 대통령 선거 등 각종 정치적 이벤트마다 사면론이 다시 불거질 것으로 예측되는 이유다.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는 “문재인 정부가 이 문제를 다음 정권으로 넘기기에 부담이 만만찮다”며 “다만 정치적으로 볼 때, 사면을 선택하면 지지층이 이탈하는 대신 보수층 지지를 얻기는 힘든 선택지여서 향후 전망을 내놓기 쉽지 않다. 그야말로 대통령 결단의 영역”이라고 말했다.

다만 정치권 일각에서는 올해 광복절과 내년 대통령 선거 이후 정도가 사면이 단행될 적기라는 예측도 있다. 4월7일 보궐선거와 차기 대통령 선거(2022년 3월9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라는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는, 선택지가 압축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특히 대통령 선거 이후에 사면을 단행한다면, 김영삼 전 대통령이 김대중 당시 당선인의 제안으로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사면했던 ‘와이에스-디제이(YS-DJ) 모델’을 재연하는 셈이다. 윤태곤 의제와전략그룹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대통령 기자회견과 재보궐 선거, 대통령 후보 경선 등 이목이 집중되는 정치적 이벤트 때마다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을 둘러싼 입장을 확인하는 질문이 계속될 것”이라며 “특히 야권에 비해 여권 입장에서 훨씬 곤혹스러운 이슈이기 때문에, 당청이 정치적 해법을 모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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