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층 이탈로 고전하는 더불어민주당이 결국 보수정당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심리전 2종세트’를 꺼내들었다. ‘읍소+엄포’ 전략이다. 2주의 선거운동 기간이 시작됐지만 좀처럼 반등의 계기를 만들지 못하자, 이완된 지지층을 결집하려고 동정론과 위기감을 불어넣고 있는 모습이다..
파란색 정부가 남은 기간 힘을 낼 수 있도록…
이낙연 민주당 선대위원장은 25일 페이스북에 “국민 여러분, 도와주십시오”라는 메시지를 냈다. 그는 “앞으로 가자는 후보와 뒤로 가자는 후보가 겨루고 있습니다. 앞으로 가자는 후보, 일만 하겠다는 후보, 깨끗한 후보를 선택해 주십시오”라며 “민주당은 절박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국민 여러분을 뵙겠습니다”라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잘못은 통렬히 반성하고 혁신하며, 미래를 다부지게 개척하겠습니다. 도와주십시오”라고도 자세를 낮췄다. 읍소 전략을 본격화한 셈이다.
최근 민주당 의원들도 페이스북에 엎드려 지지를 호소하는 영상 메시지를 공유하고 있다. 1분 남짓 분량인 이 영상은 “기대가 컸기에 더 크게 실망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압니다. 파란색이 미운 당신, 그 마음 쉽게 되돌릴 수는 없겠지만 파란색 정부가 남은 기간 힘을 낼 수 있도록 박영선·김영춘 후보에 투표해 주십시오”고 호소하는 내용이다.
동영상은 이어 “파란색이 싫어졌다, 빨간색이 좋아졌다가 같은 말인가요”라고 물으며 “당신은 빨간색이 어울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당신은 단 한번도 탐욕에 투표한 적이 없습니다”라고도 읍소한다.
이 동영상은 강성 친문으로 알려진 의원들이 주로 공유하고 있다.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지낸 윤건영 의원은 영상을 갈무리한 사진을 페이스북에 공유했다. 김종민 민주당 최고위원도 같은 사진을 공유했다. 청와대 대변인을 지낸 고민정 의원은 영상을 공유하면서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랍니다”라고 적었다. 특히 고 의원은 ‘국민의힘 지지가 탐욕의 선택’이라는 대목에 대한 야당 의원들의 비판이 이어지자, “무슨 말을 하셔도 좋다. 그래서 화가 풀릴 수 있다면 듣겠다. 다만 가만 있으라, 아무 말도 꺼내지 말라 하지는 말아 달라”며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이 만들어 가는 세상을 거꾸로 돌려놓을 순 없다. 잘못도 있고, 고쳐야 할 점들도 있지만, 포기하고 주저앉아 울고만 있을 순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
읍소 전략은 종종 엄포 전략과 짝을 이룬다. 자신을 낮추며 혁신을 약속한 뒤, 상대 편이 당선되면 펼쳐질 암울한 미래를 경고하는 것이다. 송영길 의원은 페이스북에 “‘뉴스공장’이 없어질 수 있습니다. 김어준, 그가 없는 아침이 두려우십니까”라며 “공포를 이기는 힘은 우리의 투표입니다. 오직 박영선입니다”라고 적었다. 서울시장에 당선되면 <교통방송> 지원 예산을 중단하겠다는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의 발언에 공포심을 자극한 것이다. 박영선 후보도 이날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드디어 교통방송 탄압이 시작됐다”며 “방송 지원 중단의 문제는 시장이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런 읍소와 엄포의 양면 전술은 3년 전 제7대 지방선거에서도 활용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문재인 대통령 당선 뒤 첫 전국 단위 선거에 나선 자유한국당은 읍소 전략을 택했다. 당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부산을 찾아 사죄의 큰절을 올리며 “부산까지 무너지면 우리 자유한국당은 문을 닫아야 한다”며 “부산 시민 여러분들의 실망과 분노에 사죄 드린다”고 호소했다. 이어 홍 대표는 “이번에 민주당이 승리하면 베네수엘라, 그리스로 간다. 올해 말이면 경기가 무너진다”고 경제 살리기를 위해서라도 자유한국당이 지지해 달라고 호소한 바 있다.
지난해 4·15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민주당이 1년 만에 읍소 전략을 들고 나선 이유는 최근 민심의 변화가 심상찮기 때문이다. 리얼미터가 <오마이뉴스> 의뢰로 단일화 성사 다음 날인 지난 24일 서울 거주 성인 806명에게 어느 후보에게 투표할 것인지를 물은 결과(신뢰수준 95%, 표본오차 ±3.5%포인트) 응답자의 55.0%가 오 후보, 36.5%가 박 후보라고 답했다.
특히 연령별로 볼때 20대에서 오 후보가 60.1%, 박 후보가 21.1%를 기록하면서 박 후보의 지지율이 현저히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령별 지지율에선 유일하게 40대 층에서만 박 후보(57.9%)가 오 후보(34.7%)를 앞섰다. 거주 지역을 기준으로 볼 때도 오 후보는 서울 전 지역에서 박 후보를 앞섰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투기 의혹 등으로 문재인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도와 민주당의 정당 지지율이 문재인 정부 출범 뒤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는 가운데, 후보 지지율 격차마저 반전을 기대하기 힘들 정도로 벌어진 셈이다. 이에 민주당은 읍소와 엄포를 통한 지지층 결집과 보궐선거에 특화된 조직표 가동을 통해 위기를 돌파하려는 모습이다. 앞서 이낙연 선대위원장은 페이스북에 “선거가 긴박하다. 전화든, 문자로든 가까운 분들에게 호소드리자. 저도 전화로 공조직을 독려했다”며 전화 통화에 나선 사진을 올렸다. 조직력을 총동원해 백병전에 나서자는 것이다. 박영선 후보는 이날 <교통방송> 라디오에서 “따박따박 하루에 2%씩 올릴 자신 있다”며 열세를 극복하겠다고 다짐했다.
새누리당 김문수 후보(대구 수성갑)가 20대 총선 선거운동 기간인 2016년 4월6일 오후 대구 수성구 범어네거리 자신의 선거 사무소 앞에서 '새누리당의 오만함을 사죄드린다'는 피켓을 세워두고 시민들에게 절을 하며 용서를 구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정치권에서는 선거를 앞둔 읍소 전략이 이미 수차례 반복됐다는 지적이 많다. 지방선거 가운데는 2014년 치러진 6·4 지방선거가 대표적이다. 선거를 두 달 앞두고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면서 분노한 민심에 직면한 당시 새누리당은 큰절과 침묵으로 ‘유구무언’ 전략을 펼쳤다. 그해 6월1일 새누리당 정몽준 서울시장 후보, 남경필 경기지사 후보 등 광역자치단체 후보들은 서울역 광장에서 큰 절을 하며 분노 여론을 달랬고, 김무성 당시 대표는 부산에서 “도와주십시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는 손팻말을 들고 침묵 선거운동을 하기도 했다. 성난 민심에 납작 엎드린 읍소 전략은 나름의 성과를 거뒀다. 선거전 중반까지 부산시장 여론조사에서도 열세를 보였던 새누리당은 경기·인천 등을 지켜내고 영남권을 싹쓸이하면서 17개 광역자치단체장 가운데 8곳에서 승리를 거둬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읍소 전략은 여야를 가리지 않았다. 2004년 17대 총선 당시 삼보일배 사죄가 대표적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사태 당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열린우리당 합류를 거부하고 민주당에 남아 한나라당과 함께 탄핵소추안 의결에 동참했다. 헌법재판소가 노 전 대통령의 탄핵을 기각한 뒤 민심의 거센 분노에 직면한 추 전 장관은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 텃밭인 광주로 내려가 금남로 전남도청을 시작으로 삼보일배로 사죄했다. 당시 삼보일배 행진은 추 전 장관의 무릎이 찢어져 피가 흐를 정도로 이어졌지만, 추 전 장관이 속했던 민주당은 9석을 얻는데 그쳤다. 추 전 장관도 낙선했다.
노현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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