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 17일 서울대 반도체 공동연구소를 방문해 반도체 물리학자인 고 강대원 박사 흉상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차기 유력 대선 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연일 ‘열공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복지·노동 및 외교안보, 반도체 등 전문가들을 1 대 1로 만나 해당 분야의 핵심 이슈에 관해 토론을 벌였다는 사실을 언론 등을 통해 알리는 방식이다. 본인이 검찰 이외 경력이 없다는 이미지를 완화하면서 전문가를 만나는 과정에서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려는 행보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 전 총장은 최근 서울대 반도체 공동연구소를 찾아 정덕균 교수로부터 반도체 산업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각국의 반도체 패권 경쟁이 격화된 가운데 반도체 이슈를 따라잡기 위해 ‘현장 강의’를 청한 셈이다. 이 자리에서 윤 전 총장은 “반도체 인력 문제를 해결해야 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다”는 조언을 들었다고 한다. 윤 전 총장은 지난 3월4일 퇴임 뒤 ‘101세 철학자’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를 시작으로 정승국 중앙승가대 교수,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 등을 접촉해 노동·청년 일자리·외교·안보·자영업 정책을 학습해왔다.
윤 전 총장은 검찰을 떠난 지 보름 만에 김형석 교수를 찾아 ‘정치’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고 한다. ‘정치 총론’을 접한 윤 전 총장은 이후엔 ‘정책 각론’으로 들어갔다. 지난달 중순엔 유럽의 복지제도 및 노동 전문가인 정승국 교수를 만나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학습했다. 또한 평소 친분이 있는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와는 전화 통화 등을 통해 외교·안보 문제를 토론했다고 한다. 김성한 교수는 <한겨레>에 “(현 정부의) 중국과 미국에 대한 협상력 문제와 신기술전쟁에 미래먹거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에 대체로 동의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윤 전 총장에 대해선, 검찰만 알 뿐이지 외교·안보·경제·복지·교육·노동 및 다른 분야에 대해선 배경 지식과 내공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라디오에서 윤 전 총장에 대해 “강에서 노는 민물고기가 바다에 나오면 힘을 못 쓴다. 검찰총장으로서 남는 게 제일 좋은 것 아닌가 싶다”고 평가했다. 대선 출마를 선언한 같은 당 박용진 의원도 지난 3월 “윤 전 총장이 가장 잘할 말이 뭐겠냐. (교육과 외교, 경제와 복지 등) 이런 문제에 답을 안 가지고 있을 거고 장담하는데 앉혀서 1시간이면 정치적 밑천이 다 드러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런 비판을 의식한 듯, 윤 전 총장은 자신에게 취약한 분야를 골라 학자들을 만나고 있다. 윤 전 총장을 만난 전문가들은 ‘해당 분야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더라’는 등의 반응을 언론에 내놓고 있다. 즉, 윤 전 총장은 제3자의 입을 통해 비록 ‘속성 과외’이긴 하나 자신이 성실한 자세로 ‘등판’을 준비하고 있다는 점을 피력하는 셈이다. 또한 전문가들과 만나는 자신의 행보를 지속적으로 노출시켜 대중의 관심을 유지하고, 정치 전면에 등장할 경우 입게 될 리스크는 최대한 뒤로 미루려는 뜻으로 풀이된다.
김형준 명지대 인문 교양학부 교수는 “윤 전 총장은 다른 여권 후보들과 달리 문재인 정부와 차별화를 통해 지지율을 유지해나갈 수 있는 위치”라면서 “국민들의 기대감을 계속 높이는 행보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검찰에 검사 후배들은 많지만 다른 분야는 생소하지 않겠나”라면서 “선거를 준비하려면 각 분야의 실력 있는 전문가들을 알아둬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배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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