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검찰총장.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달 말 정진석‧권성동·윤희숙 국민의힘 의원들을 잇따라 만난 것으로 확인됐다. 윤 전 총장은 지난 3월 검찰총장 퇴임 뒤 석 달 동안 학자나 전문가들을 만나며 물밑 행보를 해왔지만, 현직 정치인들과의 만남이 공개된 건 처음이다. 윤 전 총장 쪽 관계자는 “입당 여부와 시기는 정해진 것이 없다”며 ‘고민 중’이라고 했지만 윤 전 총장이 국민의힘 소속 의원을 연쇄적으로 접촉한 것은 ‘제3 지대’를 시도하기보다는 국민의힘 안착으로 방향을 정한 것 아니냐는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윤 전 총장은 지난 26일 서울의 한 음식점에서 정진석 의원(5선)과 만나 정치참여 문제를 포함해 폭넓게 의견을 나눴다고 한다. 정 의원의 지역구인 충남 공주는 윤 전 총장 아버지가 거주했고 집안인 파평 윤씨의 집성촌이 있는 지역으로, 정 의원은 윤 전 총장 영입을 오래전부터 주장했다. 정 의원은 1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윤 전 총장에게) 정치참여 선언과 동시에 국민의힘 입당 결심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고 밝혔다. 윤 전 총장은 입당 제안에 확답을 하지 않았으나 경청하는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윤 전 총장은 최근 경제학자 출신인 윤희숙 의원(초선)과도 만났다. 지난해 ‘나는 임차인입니다’라는 토론으로 화제에 올랐던 윤 의원은 기본소득과 재산비례벌금제 등으로 이재명 경기지사와 설전을 벌이며 ‘저격수’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윤 전 총장의 한 지인은 “윤 전 총장이 평소 ‘경제통’인 윤 의원 주장에 깊게 공감했다”며 “윤 전 총장이 먼저 요청해 만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윤 전 총장은 지난달 29일 외가인 강릉에 내려가 지역구 의원인 권성동 의원(4선)과도 만나 식사를 함께했다. 이날 자리에 배석한 한 지인이 ‘무조건 대선 후보로 나와야 한다. 당신을 통해 정권 교체가 이뤄져야 한다’고 하자, 윤 전 총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의힘 내부에선 6·11 전당대회 이후인 6월 말 늦어도 7월 초엔 윤 전 총장의 대선 로드맵이 어느 정도 가시화할 것이란 이야기가 나온다. 한 초선의원은 <한겨레>에 “언론에 보도된 분들 말고도 당내에 윤 전 총장과 연결돼 있는 분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며 “우리 당과 함께 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친 것이란 해석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라고 입당 가능성을 크게 봤다.
변수는 신임 당 지도부의 대선 경선 기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당 대표 선거 예선에서 1위를 차지한 이준석 전 최고위원은 “공정한 룰을 만들어 예정된 시간에 ‘경선 버스’를 출발시켜야 한다”는 이른바 ‘자강론’을 펴는 반면, 2·3위인 나경원 전 의원과 주호영 의원은 윤 전 총장을 포함한 야권 주자가 함께하는 ‘원샷 경선’을 주장하고 있다. 나 전 의원은 전날 <문화방송>(MBC) ‘100분 토론’에 출연해 “‘경선 열차’는 추석이 지난 9월 말에 출발해야 한다. 멀찍하게 경선 열차 출발일을 정하고 그동안 충분히 야권후보들을 모두 모으는 작업을 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한편에선 이 전 최고위원이 그동안 당 안팎 대선 주자들에게 개방적인 태도를 유지해온 만큼 그가 대표가 되더라도 시기의 문제일 뿐 윤 전 총장의 입당엔 장애물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되려 ‘이준석 돌풍’으로 인한 밴드왜건 효과로 전당대회 이후 국민의힘 정당 지지율이 올라간다면 제1야당의 구심력이 강해지면서 윤 전 총장에게 입당의 명분과 조건을 제공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배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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