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아셈볼룸에서 열린 대한민국 소재·부품·장비산업 성과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일본이 2019년 기습적으로 한국에 수출규제를 한 지 2년을 맞아 “우리 경제에 큰 충격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지만, 우리 기업들과 국민들이 힘을 모아 위기를 극복해냈다”면서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향해 전진했다”고 선언했다.
문 대통령은 2일 서울 코엑스 무역협회에서 연 ‘소재·부품·장비 산업 성과 간담회’에서 “기습 공격하듯이 시작된 일본의 부당한 수출규제 조치에 맞서 소재·부품·장비 자립의 길을 걸은 지 2년이 되었다”면서 “오히려 핵심품목의 국내 생산을 늘리고 수입선을 다변화하여 소부장 산업의 자립도를 획기적으로 높이는 계기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그 성과로서 일본의 수출규제를 받았던 반도체 제조공정 핵심 소재인 3대 품목의 공급망이 안정적으로 구축됐다고 밝혔다. 50%에 육박했던 불화수소의 일본 의존도를 10%로 낮췄고, 불화폴리이미드는 자체 기술을 확보했으며 이유브이(EUV) 레지스트는 글로벌 기업의 국내 양산을 앞두고 있다고 소개했다. 100대 핵심품목에 대한 일본 의존도도 25%까지 줄였다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은 “우리가 갖게 된 교훈은 글로벌 공급망 속에서도 우리의 강점을 살려나가되, 핵심 소부장에 대해서는 자립력을 갖추고 특정국가 의존도를 낮추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라고 했다.
청와대는 이런 성과에 대해 ‘대통령의 결단’을 부각시키고 있다. 전날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페이스북에 “지도자의 외로운 결단으로 인해 ‘소부장 독립운동’의 방향이 결정됐다”는 글을 올려, 일본이 2년 전 기습적인 수출 규제를 했을때 청와대와 정부는 ‘외교적 방법에 의한 해결’로 의견을 모았지만 문 대통령이 정면대응으로 길을 잡았었다고 설명했다.
당시 문 대통령은 참모들로부터 “어쩔수 없다는 ‘현실론’”을 담은 메시지 초안을 받고는 침묵한 뒤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이 회의에서 “바둑 둘 줄 아십니까? 바둑을 둘 때 승부처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지요? 이 문제를 다루면서 지금이 바둑의 승부처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까? 나는 지금이 소부장 독립을 이룰 수 있는 승부처라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이런 메시지를 건의할 수 있습니까?”라고 문 대통령은 참모들을 다그쳤다.
박수현 수석은 “문 대통령의 평소 화법과 스타일을 생각하면 엄청난 질책”이라고 표현했다. 회의 뒤 “‘이 위기를 이겨내지 못하면 영영 기술독립의 길은 없을 것’이라는 지도자의 강력한 의지가 참모들에게 전해졌고 그렇게 2년 전 ‘소부장 독립운동’의 방향이 결정됐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그해 하반기 내내 일본 수출규제에 맞서 정부와 민간이 함께 힘을 모을 것을 독려했었고, 이같은 상황 속에서 남북미간 대화와 협상 중단, 일자리 문제 개선 미약 등의 현안은 상대적으로 가려졌다. 이어 한국과 일본은 ’화이트 리스트 제외’와 ‘한일 군사비밀정보의 보호에 관한 협정(GSOMIA)’을 주고받으며 갈수록 강경대응으로 치달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2일 대한민국 소재부품장비산업 성과간담회에 함께한 참석자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청와대 제공
한일 관계는 현재 수교 이래 최악의 냉각기에 들어간 상태다. 지난달 영국에서 열린 주요7개국(G7) 정상회의에 참석했던 문 대통령은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와 약식으로라도 회담을 열려 했지만, 스가 총리가 자리를 피하며 무산되는 등 좀처럼 관계 개선의 실마리를 풀지 못하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수출규제 해소를 위한 일본과 협상 여부에 대해 “일본이 수출관리에 대해 요구했던 지적사항을 다 만족을 시킨 뒤 수출규제를 원상회복시켜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일본은 그것에 대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다만 문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우리 정부는 뭐든지 자립해야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면서 “정부는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해서도 외교적인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앉아있는 책상에는 ‘자, 이 모든 것은 소부장으로부터 시작되었다!’라고 쓰여져있었다.
이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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