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8일 박진규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이 부처 내부적으로 ‘차기 대선 공약 관련 어젠다를 준비하라’는 취지의 지시를 한 것에 대해 “매우 부적절하다”며 강하게 질책했다. 문 대통령이 정치적 중립을 위해 대통령 선거와 거리를 두겠다고 강조한 상황에서, 공직 사회가 조금이라도 의심을 살 만한 것을 하지 말라고 경고한 것으로 풀이된다.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서면 브리핑을 통해 문 대통령이 산업부 차관 관련 보도를 보고 이같이 지시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차후 유사한 일이 재발하면 엄중하게 책임을 묻겠다”고 경고하며 “다른 부처에서도 유사한 일이 있는지 살펴보라”고 지시했다.
앞서 박진규 산업부 차관은 최근 내부 정책 회의를 열고 “대선 캠프가 완성된 후 우리 의견을 내면 늦으니 후보가 확정되기 전에 여러 경로로 의견을 사전에 많이 넣어야 한다”고 말했다고 <조선일보>가 이날 보도했다. 박 차관은 또 “어젠다들이 충실하게 잘 작성되었으나 정치인 입장에서 ‘할 만 하네’라고 받아줄 만한 게 잘 안 보인다”고 지적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산업부는 “차관의 지시는 새로운 정책 개발 시 국민 눈높이에 맞춰 일자리, 중소기업, 지역경제 등의 정책에서 구체적인 효과가 나타나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참모회의에서 이같은 보고를 받고 크게 질책했다. 지난 7월5일에 “정치의 계절이 돌아왔으나, 청와대와 정부는 철저하게 중립을 지키는 가운데 방역과 경제 회복 등의 현안과 민생에 집중하라”고 지시했지만, 일선 부처에서 이를 제대로 따르지 않은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더구나 물의를 빚은 박진규 산업부 차관은 문재인 정부 청와대에서 신남방·신북방 비서관을 지내는 등 대통령의 철학을 옆에서 지켜본 인사라 충격이 더 컸던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번 사안을 보고 공직사회의 기강을 엄히 잡아야겠다고 생각하신 것 같다”고 전했다.
또다른 청와대 관계자도 “통상 이때쯤 되면 부처에서 자신의 정책을 다음 정부에 반영하기 위한 이런 일들을 하기도 한다”면서도 “하지만 자칫 ‘줄대기’ 같은 것으로 비칠 수 있으니 ‘정치적 중립’을 지키라고 다시 강조한 것이고, 현 정부의 정책을 잘 챙기라고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30일에도 법무부 차관 브리핑 도중 직원이 무릎을 꿇고 우산을 씌운 장면이 보도되며 과잉의전 논란이 불거지자 “이런 문제가 재발하지 않도록 살펴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이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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