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호 전 청와대 연설비서관이 2022년 6월15일 새 시집 <그림자를 가지러 가야 한다>를 들고 한겨레신문사를 찾았다. 박승화 기자
19살 이른 나이에 시인으로 등단했는데 등단 39년 만에 나온 시집이 네 번째다. 시를 잊지 않았지만 시만 쓰고 살 수 없는 세월이었다.
“생애 처음 당원이 되었다. 쓰고 있던 시, 마지막 구절에 마침표를 찍지 못한 채 임무를 부여받았다. 죽음조차 내 것이 아닌 당원이 되었다.”(‘죽음조차 내 것이 아닌’ 부분, 본문 시는 모두 신간 <그림자를 가지러 가야 한다>에서 발췌)
신동호(57) 전 청와대 연설비서관이 시인으로 돌아왔다. 신동호 시인은 2015년 2월 문재인 전 대통령이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로 취임한 뒤 비서실 부실장으로 합류해 청와대 연설비서관까지 내리 7년 넘게 문 전 대통령의 연설과 메시지 작성을 보좌했다. 그렇게 부여받은 ‘임무’는 2022년 5월10일 문 대통령 퇴임 뒤에야 끝났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시집 <그림자를 가지러 가야 한다>(창비)를 들고 나타났다. 2015년 이후 인터뷰는 처음이라는 그를 6월15일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났다.
지난 5년 동안 그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단 두 가지만 썼다. 달리기 기록과 시였다. 처음 대통령 연설만 맡았던 연설비서관 일은 페이스북·트위터 등 대통령이 올리는 SNS 글 초안 작성까지 커졌다. 헤아리니 5년 동안 쓴 글만 3000여 편에 이른다.
그는 “매일매일 대한민국에서 제일 높은 사람에게 숙제 검사를 받은 것”이라고 했다. “동호 형은 안 뛰면 죽을 것 같아서 마라톤 선수처럼 뛰었”(전 청와대 핵심 관계자)고, 그는 “아침에 출근하면 밤늦게 퇴근할 때까지 화장실 가는 것 빼곤 못 일어나는 날도 있다. 하루 종일 글을 읽고 쓰는 압박감을 풀기 위해 시를 썼”다. 그렇게 쓴 시는, 매번 평가받아야 하는 말 대신 온전히 자기로 머물게 했을 법하다.
“정치권이 말이 많은 곳이라 5년 동안 일은 제대로 못하면서 달리기만 했으면 저 인간은 달리기만 한다는 소리를 들었을 것이고, 반대로 달리기라도 안 했으면 자기 관리를 잘 못했다는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나쁜 소리 안 듣고 꾸준히 한 거 보면 선방한 것 아닌가 싶다.”
시인이 대통령 연설비서관을 맡은 것은 과거 정부에선 드문 일이었다. 문 전 대통령의 연설은 시가 담기거나 독립운동가의 이름을 부르는 등 이전보다 감성적이고 역사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또 ‘애국’과 ‘산업화’ ‘선도국가’ 등을 강조하는 등 보수층과의 공감 폭을 넓히려 했다는 평가도 있었다. 그는 “대통령에게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었다면 약간의 문학적인 상상력을 더한 부분이 아닐까”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잘 썼다’ ‘못 썼다’고 이야기한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냥 ‘이렇게 합시다’ ‘저렇게 합시다’고 한다. ‘고생했어’라고 따뜻한 말 한마디 없이 공적으로만 대하고 칭찬에 인색한 분이었다.” 다만 문 대통령은 따뜻한 말 대신 2019년 홍조근정훈장을 수여했다.
그는 “아이러니한 이야기인데 과거보다 (자신의) 시가 훨씬 좋아진 느낌”이라고 자평했다. 대통령 연설문을 다듬는 과정에서 “‘어깨 힘을 좀더 빼라’ ‘글을 끝까지 다시 한번 보라’는 게 몸에 자연스럽게 배어 예전과 달리 시도 이제 다시 보고 고치게 됐다”는 것이다.
<그림자를 가지러 가야 한다> 출간은 2014년 펴낸 세 번째 시집 <장촌냉면집 아저씨는 어디 갔을까?>를 낸 뒤 8년 만이다. 이 시집은 박근혜 정부가 ‘세종도서사업’에 선정하지 말라고 지시한 게 2017년 뒤늦게 드러났다. 세종도서사업은 정부 예산으로 1000만원 상당의 책을 사들여 공공도서관에 배포하는 사업이다.
그는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초대 문화국장 출신으로 감옥에도 한 번 다녀왔다. 이후 대북문화교류 사업에 뛰어들어 평양과 개성·금강산 등에 수차례 오가며 성과를 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사업은 대폭 줄었다. 그동안의 울분이 담겼을 법하지만, 오연경 문학평론가는 시집 해설을 통해 “시인은 ‘집단의 정의가 개인의 복수 행위보다 더 잔혹’할 수 있다는 뼈아픈 경험을 통해 ‘진보라는 절대운동은 없’으며 세상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격렬한 동사들’이 아니라 ‘따뜻한 동사들’이라는 생각에 도달한다”고 했다.
그 역시 “젊었을 때는 그냥 세상을 뒤엎고 싶었다”고 했다. 그렇지만 “이제는 거문고를 부수지 않고 줄만 고쳐매 소리를 조화롭게 한다는 ‘경장’이라는 말이 좋다”고 했다.
“혁명이란 단어를 오랫동안 품고 살았다. 용맹정진하기엔 미련이 많은, 의지박약형 인간인 내가 혁명을 꿈꾼 건 오직 스무 살 뜨거운 가슴속으로 밀고 들어온 ‘광주’ 때문이었다. 그러나 혁명의 피 냄새는 늘 두려웠다. 늦었지만 고백한다./ ‘경장’에 담긴 두 가지 의미가 맘에 든다. 거문고를 부숴버리지 않고 줄만 고쳐 맨다는 것, 그 결과가 조화를 부르는 소리라는 것.”(‘경장’ 부분)
그는 문 전 대통령 시절이 이른바 ‘고구마를 먹은 것’처럼 답답했다는 평가에 동의하지 않는다. 재난지원금, 윤석열 전 검찰총장 징계,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국면마다 문 전 대통령은 빠른 결정을 내놓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는 “반걸음만 전진해도 전진하는 것”이라고 옹호했다. “정치란 모든 사람의 소리를 듣고 결정하는 것으로 배웠는데 어느 순간 우리나라 정치가 굉장히 빨리빨리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러다보니 양쪽의 목소리만 부딪히고 진전 없이 끝난 게 사실 굉장히 많은 것 같다. 예전 노무현 정부 여대야소 상황에서 국가보안법 등 4대 악법을 완전히 고치려다 아무것도 못한 경험을 문 대통령은 충분히 숙지하고 있었다.”
시집은 그에게 남은 목표를 보여준다. “그해 가을이 분명하다. 그림자를 두고 왔다. 보통강 가 버드나무길 어디다. 그림자가 버드나무 그늘에 묻혔을 때 사랑에 빠진 걸 눈치챘어야 했다. (…) 평양의 쓸쓸함은 그림자 탓이다.”(표제시 ‘그림자를 가지러 가야 한다’ 부분)
그는 “이제 다른 사람 연설문을 써주는 일은 죽어도 안 할 것”이라면서도 다만 “남북관계라든지 어떤 상상력을 필요로 하는 부분에서 도움이 된다면 당연히 역할을 하겠다”고 했다.
이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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