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방안’의 정당성을 항변하는 과정에서, 한 공기업이 특정 언론사의 비판 기사를 수억원대의 광고 및 협찬으로 막았다는 등의 ‘권언 유착’ 사례를 공개해 파문이 예상된다.
청와대 홍보수석실은 지난 1일 <청와대 브리핑>에 올린 ‘서로가 민망한 구습의 잔재’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몇건의 ‘권언 유착’ 사례를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공개했다. 청와대는 이 글에서 “고위공직자 A씨가 지난해 출입기자의 데스크로부터 간곡한 민원을 받았다. 해당 언론사가 추진 중인 수익사업이 기관의 규제에 걸려 있다며 풀어달라는 것이었다. 자사의 수익 및 경영에 직결되는 중요한 내용이니 꼭 도와달라는 요지였다. A씨는 이 민원을 처리해주었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또 “한 언론사가 비판 특집기사를 준비하자 ○○ 공기업은 광고 0억원, 협찬 0천만원을 약속하고 문제의 보도를 막았다. 또다른 언론사와 또다른 사안으로 부딪치자 물밑 협상을 통해 0억0천만원의 광고를 집행해 보도가 안 나갔다”고 주장했다.
<청와대 브리핑>은 이 글을 쓴 배경에 대해 “부처별 출입시스템이 남아 있는 한 공무원이나 기자 모두 이런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말해, 정부의 취재지원시스템 개편이 권언 유착을 뿌리뽑는 데 필수적이라는 논리를 폈다.
그러나 청와대의 이런 주장에 대해 학계와 언론단체들은 “실제 그런 문제가 있다면 정부의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 방안 홍보에 이용할 게 아니라 실태를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실제로 청와대는 “고위공직자가 언론사 청탁으로 민원을 해결해줬다”고 밝히면서도, 그 과정에서 불법·탈법 요소가 있었는지는 정확히 언급하지 않고 넘어갔다. 만약 불법·탈법이 저질러졌다면 법에 따른 처벌을 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광고와 비판기사를 맞바꾼 ○○ 공기업의 사례에 대해서도 김승수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국민의 세금에서 나오는 정부·공기업 광고집행 예산을 언론의 비판적 기사를 은폐하려는 미끼로 썼다면 청와대는 반드시 실상을 밝혀야 한다. 해당 언론사도 문제지만 광고로 입막음하려 한 해당 공기업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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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와대가 밝힌 권언유착 사례
사례1. 정부부처 출입기자들이 해외 ‘관련시설’ 시찰을 명분으로 닷새짜리 외유 일정을 짜면서 ○○ 공기업이 1명당 수백만원의 경비를 부담하기로 했음. 대부분의 일정을 박물관·사원 등 관광으로 채웠다가 파문이 일자 외유를 취소했음.
사례2. 고위공직자 A씨가 지난해 출입기자의 테스크와 고위 간부로부터 해당 언론사가 추진 중인 수익사업이 기관의 규제에 걸려 있다며 풀어달라는 부탁을 받고 이 민원을 처리해 줌.
사례3. 방만 경영으로 비판받는 ○○ 공기업이 한 언론사가 비판 특집기사를 준비하자 광고 0억원, 협찬 0천만원을 약속하고 문제의 보도를 막았음. 또 다른 언론사와 또 다른 사안으로 부딪치자 물밑 협상을 통해 0억0천만원의 광고를 집행해 보도가 안 나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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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가 이번 사례를 취재기자들의 공무원 접근 제한 및 기자실 통폐합의 이유로 연결짓는 것도 논리적 비약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창룡 인제대 언론정치학부 교수는 “기자실을 없애도 이런 식의 잘못된 관행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며 “별개의 문제를 가지고 기자실 통폐합 방안의 근거로 삼는 건 논리적 비약”이라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또 “정부와 언론 간에 음성적인 거래가 있었다는 사실을 청와대가 알면서도 덮어뒀다면 이는 비겁하고 원칙을 저버린 행위”라고 덧붙였다.
더욱이 정보를 독점하고 있는 청와대가 이름 밝히지 않고 권언유착의 사례를 공개한 것은 해당 언론사에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하며 또다른 ‘권언 유착’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양문석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실장은 “언론의 익명보도 관행을 타파해야 한다고 하면서 정작 청와대가 민감한 사안을 익명으로 처리해 언론사 전체를 부도덕한 집단으로 몰아넣으려 한다”며 “책임감 있는 실명공개”를 요구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의 핵심 관계자는 “권언 유착의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정부와 언론 모두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지, 처벌이나 파문을 목적으로 한 게 아니기 때문에 실명을 공개하지 않은 것”이라며 “앞으로도 공개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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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청와대 브리핑 전문 서로가 민망한 구습의 잔재 / 이런 관행을 고치려 합니다 ⑤
이(異)문화 체험, 박물관 관광, 왕궁 관광, 사원 관광, 원주민 마을 관광…. 닷새 일정에, 취지에 맞는 방문시찰은 단 두 건. 나머지는 모두 관광. 1인당 소요경비 ○백만원은 ○○공기업 부담.
최근 문제가 된 공기업 감사들의 외유 얘기가 아닙니다. 모 부처 출입기자단이 해외 ‘관련시설’을 둘러본다며 출국을 하려다 사전에 안팎에서 문제가 돼 불발에 그친 외유일정입니다. 아마 비용을 부담한 그 부처 산하의 공기업은 효과가 있다고 생각했겠지요. 기자들과 일정기간 숙식을 함께 하면서 맺은 ‘관계’는 상당한 홍보인프라가 될 것이라는 ‘계산’을 했을 것입니다. 일종의 거래가 성립되는 것입니다.
고위공직자 A씨는 지난 해 출입기자의 데스크로부터 간곡한 민원을 받았습니다. 해당 언론사가 추진 중인 수익사업이 기관의 규제에 걸려 있다며 풀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자사 수익 및 경영에 직결되는 중요한 내용이니 꼭 도와달라는 요지였습니다. A씨는 이 민원을 처리해주었습니다.
‘방만경영’ 비판을 자주 받는 ○○공기업은 모 언론사가 비판특집 기사를 준비하자 해당 언론사와 갈등을 겪다가 결국 광고 ○억원, 협찬 ○천만원을 약속하고 나서야 문제의 보도를 막았던 일을 경험했습니다. 또 다른 언론사와는 또 다른 사안으로 부딪히다 물밑협상을 통해 ○억○천만원의 광고를 집행해 관련보도가 안 나갔던 일이 있습니다. 결국 개선이 필요한 경영상의 문제가 공론으로 형성되지 못하고 없던 일이 되고 만 것입니다.
부끄러운 일입니다. 줄어들고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작은 문제’라고 보기에는 그 빈도가 아직은 꽤 되는 편입니다. 90년대 자정운동 이후 언론계 청렴 풍토는 상당히 좋아졌습니다. 2003년 이후, 정부가 언론과의 유착해소를 강조하면서 더욱 맑아졌습니다. 하지만 과거 잔재가 하루 아침에 없어지진 않습니다.
참여정부 들어서 언론 관계에 관한 한 원칙대로 해 온다고 해왔지만 일선에서 벌어지는 이런 ‘탈선’들을 막지 못했습니다. 부처와 산하공기업에서 벌어진 일이고, 관련 공무원과 공기업 임원들이 적극적 혹은 소극적으로 가담한 일이니 정부의 책임을 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정부에서는 이런 낡은 관행을 없애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해왔고, 문제 사례가 발견되면 크고 작은 문책을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이런 잘못된 관행이 완전히 뿌리 뽑히지 않았습니다. 긴장이 풀리면서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는 분위기가 감지되기도 했습니다. 해당 기관이나 담당자를 개별적으로 문책하는 방식으로는 근본적으로 뿌리 뽑기 어렵다는 판단도 들었습니다.
비록 일부의 경우이기는 하지만 왜 아직도 이런 문제가 뿌리 뽑히지 않는 것인지 생각해봤습니다. 문제는 현재의 제도적-공간적 특성이 과거관행을 유도하기 쉽다는 점입니다. 부처별 출입시스템이 남아 있는 한 공무원이나 기자 모두 이런 유혹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한정된 기자들이 모이는 부처별 출입처 제도와 출입기자 전통은 서로를 긴장관계, 원칙관계로 가져가기 보다는 좋은 게 좋고, 편한 게 편한 관계로 가게 합니다.
출입처를 통해 맺어진 편한 관계는 때로 편법이나 비정상적 일처리로 연결되곤 했습니다. 견제와 감시가 있어야 할 자리를 편법과 거래가 파고드는 것입니다. 이런 일이 하나 둘 더해져 유착과 공생의 관계가 되는 것이겠지요. 정부나 공공기관은 긴장이 느슨해지면서 이런 잘못된 관행을 적당하게 이용하기도 했습니다.
솔직히 공무원 입장에선 그런 관계가 편할 수도 있습니다. 언론과 잘 지내면 도움 받을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원칙에 맞지 않습니다. 이번에 기자실 개혁 문제를 꺼낸 이유 중에는 우리 언론의 보도가 출입처 단위의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 좀 더 높은 수준으로 한 단계 나아졌으면 하는 기대도 있지만, 이런 식으로 가면 권언유착의 시절로 다시 후퇴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깔려 있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공무원이나 기자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일부의 편중된 사례입니다. 그러나 그럴 소지를 제도적으로 차단하는 게 중요합니다. 법이 소수의 위법자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선량한 다중이 지켜야 할 위법사례 가이드라인이 되기 위해 존재하는 것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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