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기탁(왼쪽) 변호사가 21일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헌법소원심판 청구서를 접수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자신의 최근 발언을 공무원의 선거 중립 의무를 위반했다고 선관위가 결정하자, 국민으로서 정치적 표현의 자유가 침해됐다는 이유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노대통령, 헌법소원 제기 주된 내용
노무현 대통령이 21일 헌법소원 청구의 근거로 제시한 핵심 논리는, 중앙선관위가 ‘선거중립 의무 위반’ 결정의 근거로 제시한 선거법 9조가 지나치게 포괄적·추상적으로 공무원의 정치 중립을 규정해 위헌이라고 판단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를 근거로 헌법에 보장된 대통령 개인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는 게 청와대 주장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청구 주장을 놓고 학자들은 엇갈린 의견을 내놓았다.
대통령은 개인인가?=최대 쟁점인 대통령의 헌법소원 주체 논란에 대해 노 대통령은 공권력 행사의 최고 당사자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당연히 헌법소원의 주체가 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노 대통령이 헌재에 제출한 청구서에서 “정치적 헌법기관이자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은 국민의 한 사람 또는 정무직 공무원으로서 표현의 자유를 비롯한 기본권의 주체”라고 밝힌 점은 이런 판단을 보여준다. 장영수 고려대 교수는 “대통령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 선거권이라는 기본권을 행사하기 때문에 기본권 주체가 된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며 이러한 주장에 동의했다. 그러나 임지봉 서강대 교수는 “과거 야당 국회의원들이 법률안 날치기 통과와 관련해 헌법소원을 냈을 때 헌재는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할 의무를 진 국가기관은 헌법소원을 청구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며 국회의원과 마찬가지로 대통령도 헌법소원의 주체가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선관위 조처가 공권력 행사?=노 대통령은 선관위의 ‘중립의무 준수 요청’이 헌법소원 근거인 공권력 행사에 해당한다는 논지를 폈다. 그 근거로는 △법률상 선관위 결정에 대한 불복 방법이 없어 최종 ‘법적 확인’ 효력이 인정되는 등 사실상 사법권에 유사한 기능이 있고 △대통령의 정치적 표현 행위를 직접 제한하는 효과를 발생시킨다는 점을 볼 때, 공권력 행사에 해당된다고 주장했다. 임 교수는 “공권력의 범위는 모든 입법·행정·사법 작용을 포괄한다는 것이 판례와 학자들의 일치된 견해”라며 “중앙선관위 위원들이 모여서 내린 결정은 당연히 공권력 행사가 된다”고 설명했다. 장 교수도 “‘발언을 계속하면 위법’이라고 확인한 선관위의 결정은 법적 구속력이 있으므로 공권력 행사가 맞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아울러 국가공무원법 제3조 3항에 의하면 대통령 등 정무직 공무원은 정치적 중립의 의무가 없기 때문에, 대통령에게 선거에서 중립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논리도 펼쳤다. 대통령은 정치활동과 선거과정을 통해 선출된 정무직 공무원으로 대통령의 국정운영 자체가 정치행위이며, 이런 이유로 미국·영국·프랑스 등 선진국도 대통령이나 총리의 정치활동 자유를 폭넓게 인정한다는 것이다.
포괄적 중립 의무 위헌?=노 대통령은 설사 대통령이 선거법 9조의 중립 의무를 진 공무원에 포함된다고 해석해도, 선거중립 의무 위반 여부는 대통령의 지위나 권한을 남용해 부당하게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했는지 여부로 한정해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고 밝혔다. 선관위가 자신의 최근 발언 가운데 구체적으로 어느 부분이 선거법 9조를 위반했는지 적시하지 않은 채 추상적 표현을 사용한 것 자체가 대통령의 정치적 자유를 침해했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한발 더 나아가, 공선법 60조, 80조, 85조 등에 공무원의 선거운동 내지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구체적으로 금지하고 있음에도, 포괄적·추상적으로 공무원의 중립 의무를 규정한 선거법 9조는 헌법상 기본권제한 원리인 명확성 원칙, 최소 필요성의 원칙에 반하는 것으로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임 교수는 “선거법 9조는 3·15 부정선거 뒤 조직적인 관권선거를 방지하기 위해 삽입된 선언적 조항”이라며 “그런데 이를 선관위가 선출직 공무원인 대통령에게까지 너무 확대 적용해서 권한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장 교수는 “선거법 9조는 공권력의 주체라 할 수 있는 대통령의 선거개입을 막으려는 것”이라며 “정치적 중립 의무는 선거중립으로 이해돼야 하며, 선거중립은 대통령도 지켜야 한다”고 밝혔다. 신승근 김태규 기자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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