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삼성특검법’ 거부기류
천호선 대변인 “원칙없는 타협” 정치권에 맹비난
천호선 대변인 “원칙없는 타협” 정치권에 맹비난
청와대가 26일 공직부패수사처법(공수처법)에 대한 논의는 거부한 채 삼성 비자금 특검법만을 처리한 정치권을 강하게 비판하고 나서, 청와대 기류가 거부권 행사 쪽으로 기운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정치권이 공수처법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거부했다”며 여러 차례 유감을 표시했다. 그는 특히 “공수처법 자체에 대한 국민 호응도가 높은데, 정치권에서 근본적인 문제에는 눈을 감고 원칙없이 (삼성 특검법) 타협이 이뤄졌다”고 비판의 강도를 높였다.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그건 정치권의 책임이라는 뜻으로 읽힌다. 다만 “더 설명하다 보면 (거부권에 대한) 답으로 가게 될 테니…”라고 말끝을 흐리며 분명한 대답은 피했다.
천 대변인의 이런 발언은 삼성 특검법 문제에서 가장 강도가 높은 것이다. 삼성비자금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한 지난 23일에는 수사대상이 너무 광범위하다는 문제를 지적했을 뿐, 정치권의 공수처법 논의 거부에 대해선 별다른 문제제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천 대변인은 여전히 “아직 특검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인지, 말 것인지 어느 쪽으로도 결론나지 않았다”며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예단을 경계했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한 청와대 내부는 정치권의 삼성 특검법 의결에 반감이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특검법이 검찰 수사중이거나 재판 중인 사안까지 특검 대상으로 설정해 국법 질서를 흔든다고 보고 있으며, 공수처법은 전·현직 국회의원들의 부정비리도 대상으로 하고 있어 당사자인 의원들이 회피하고 있다고 판단한다는 것이다.
실제 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참모들에게 “거부권 행사 여부는 법무부 등의 의견을 들어 종합적으로 판단하자”면서도 “국회의원 자신들의 부정비리까지 조사대상에 들어가는 공수처법 처리에는 침묵하면서 삼성 특검법을 통해 생색을 내려는 정치권의 모습이 실망스럽다. 또 특검의 본질이 받지도 않은 나의 당선축하금 문제인 것처럼 몰고가는 정치권의 모습도 정말 우습다”고 정치권에 강한 불신을 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 대통령이 지난 24일 합천 해인사에서 “당선축하금을 받지 않았다”고 밝힌 데 이어, 이날 천호선 대변인이 “당선축하금 운운에 대해선 청와대는 어떤 꺼리낌도 없다. 당선축하금이 특검의 본질인양 하는 것은 정략이며 국민을 호도하는 것”이라 비판한 것도 청와대의 이런 분위기가 표출된 것으로 해석된다.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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