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영준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
청와대·장관인사 주무른 ‘실세’
‘형님 민원창구 전횡’ 비판 표적
‘형님 민원창구 전횡’ 비판 표적
이른바 청와대 ‘왕비서관’으로 거론됐던 박영준(48) 기획조정비서관이 9일 낙마했다.
그는 대우그룹에 근무하다, 1994년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의 비서관으로 정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이어 2002년 서울시장 선거 때 후보비서실 부실장을 맡으면서 이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이 대통령의 고려대 후배이기도 한 박 비서관은 서울시 정무국장을 거쳐 대선 때는 네트워크 팀장을 맡아 외곽지지 조직인 ‘선진국민연대’를 꾸려왔다. 우직하고 충성심이 강해 이 대통령으로부터 신임을 두텁게 받아왔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박 비서관은 그저 캠프 내 386 참모들의 맏형격이었을 뿐, 이재오 정두언 의원 등 거물급들에 가려 존재감이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대선 이후, 박 비서관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비서실 총괄팀장을 맡으면서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특히 총선을 앞두고 의원들이 모두 선거로 눈을 돌린 가운데, 박 비서관이 청와대 수석과 장관 인선 작업을 맡으면서 대통령의 ‘유일 실세’로 급부상했다. 청와대 입성 이후에는 인사는 물론 국정 전반을 기획하고, 심지어 대통령실 감찰 업무까지 도맡았다.
그러나 쇠고기 파동이 빚어지면서, 그가 주무른 초기 인사가 민심이반의 뿌리라는 지적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이상득 의원의 비서관 출신임을 들어, 그가 ‘형님’의 인사민원을 처리하는 창구라는 이야기도 무성해졌다. 최근 들어선 그 단계를 넘어, 그 스스로 전횡한다는 소문마저 늘어갔다.
이런 와중에 정두언 의원이 지난 7일 박 비서관을 향해 “대통령 주변 사람들을 이간질시키고 음해하고 모략하는 데 명수”라며 비판하고 나섰다. 이어 9일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 의원들도 한 목소리로 “읍참마속의 결단이 필요하다. 청와대 주요 요직은 반드시 교체되어야 한다”며 성토했다. 이 대통령은 박 비서관을 사퇴시킨 이날, 정진석 추기경과의 오찬에서 “인선 과정에서 국민의 눈높이에 부합하는 도덕적 기준을 소홀히 한 측면이 있었다”며 처음으로 인선의 잘못을 시인했다.
이 대통령이 9일 전격적으로 박 비서관을 물러나게 함에 따라, 청와대 및 내각의 후속 개편 폭도 커질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또 이 대통령이 청와대와 한나라당의 불협화음에서 당의 손을 들어주는 모양새를 보인 것도, 앞으로 당의 입김이 커질 것을 짐작하게 한다.
권태호 기자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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