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각한 이 대통령 = 이명박 대통령이 3일 오전 청와대에서 국무회의시작 전 한승수 총리와 얘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수석·내각 일괄 사의 열흘째
참모들 “곧 집에 갈텐데…“ 조직 균열·책임 회피
여당 계파별 ‘입김’ 부작용…인사경험 부족 한계
참모들 “곧 집에 갈텐데…“ 조직 균열·책임 회피
여당 계파별 ‘입김’ 부작용…인사경험 부족 한계
15일로 청와대 대통령실장과 수석비서관 이상 전원이 사표를 낸 지 열흘이 됐다. 내각도 일괄사의를 표명했다. 그럼에도 후임 인선은 아직 윤곽이 불투명하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날 “구체적인 인사 폭과 시기가 최종적으로 서 있지 않다”며 “아직 백지상태”라고 말했다. 과거 정부에서 유례가 드문 ‘식물 청와대’ ‘식물 내각’ 상태가 길어지고 있다.
인사가 늦어진 데 따라 조직 균열도 나타난다. 최근 청와대 각 수석실에서는 다른 라인에 국정난맥 책임을 서로 떠넘기는 양상이 두드러진다. 주요 회의 결과가 유출되는 일도 잦다. 어차피 집에 갈 생각을 하는 참모들이 더이상 ‘보안 유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탓이다.
여당의 각 계파가 흘리는 하마평도 또다른 부작용을 낳고 있다. 박근혜 전 대표 쪽 사람들은 ‘박근혜 총리론’을 두고 “말로만 무성했지, 진정성 있는 제안은 없다”며 “불신의 골만 더 깊어졌다”고 말한다. 이런 맥락에서 친박 성향 허태열 의원은 최근 전당대회 출마의 뜻을 접었다. 박 전 대표가 “왜 그렇게 나가시려고 하세요?”라며 사실상 금족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이명박 당’에 협조하지 않겠다는 불편한 심사가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미국과 진행중인 쇠고기 추가 협상 결과를 보고 나서…”라고 인사가 늦어지는 이유를 설명한다. 또한 ‘비영남, 비고려대, 재산 10억원 이하’라는 인사 3원칙 등이 세간에 알려지면서 국민들의 기대치가 높아진 점도 부담으로 작용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청와대는 4월27일 박미석 사회정책수석의 사퇴로 생긴 빈 자리를 지금껏 메우지 못하고 있다. 연설기록비서관 자리는 이태규씨가 3월에 사퇴한 이래 공석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6월 경선 캠프 출범 당시에도 최종 인사를 마무리할 때까지 무려 2달 넘게 걸렸고, 대변인을 뽑는 데는 3개월을 넘겼다. 경선 승리 뒤에는 후보 비서실장과 사무총장 등을 임명하는 데 3주, 본선을 위한 선대위 인선도 1달을 끌었다. 즉 굵직한 인사를 두고 마냥 시간을 끄는 게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 것이다. 이 대통령조차 과거 언론 인터뷰에서 “나는 인사를 할 때 햄릿이 된다”고 말한 바 있다.
이를 두고 한나라당의 한 측근 의원은 “이 대통령이 인사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이 의원은 “이 대통령은 현대건설 사장을 할 때 일종의 보신책으로, 인사를 거의 하지 않았다. 오너 일가의 인사청탁이 많았기 때문”이라며 “그래서 인사만큼은 정주영 회장이 직접 하도록 하거나 다른 임원에게 맡겼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권한과 책임 위임을 토대로 운영되는 ‘피라미드형 시스템’에 익숙하지 않은 것도 또한가지 이유가 되는 것같다. 이 대통령은 현대건설에서 자신을 중심으로, 부하 직원들과 일 대 일로 상대하는 ‘방사형 구조’로 평생 일해왔고, 이는 서울시, 대선 캠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그 ‘방사형 구조’를 자신이 직접 아는 사람 위주로 채워왔다. 이러한 경험의 한계가 국가경영 책임을 맡게 되면서 불거지고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 주변에서 “사람이 없다” “인재 풀이 좁다”는 이야기가 자주 나오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권태호 기자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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