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장관 후임자 없어 마땅찮고
이대사 ‘넘버2’ 희생 여론 부담
이대사 ‘넘버2’ 희생 여론 부담
청와대가 외교안보 라인 문책 문제를 놓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거듭되는 외교 실책 때문에 야당은 물론, 여당에서조차 문책론이 점차 고조되는 까닭이다. 사석에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넘어가긴 곤란한 것같다”고 말하는 청와대 관계자들이 늘고 있다.
우선 문책 시기와 관련해선 다음달 5~6일 한·미 정상회담 이후가 되리라는 데 이견이 없는 편이다. 대사, 장관, 수석을 가릴 것 없이 이들 모두가 당면한 정상회담 업무를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누구에게 책임을 묻느냐이다. 대상을 더 좁히면, ‘유명환 외교부 장관이냐, 이태식 주미 대사냐’로 압축된다. 유 장관은 아세안지역안보포럼 의장성명 건이, 이태식 주미 대사는 독도 표기 건이 걸려있다.
청와대 안에서는 “국민감정상 독도 문제가 아세안지역안보포럼에 비해 훨씬 민감하지만, 정부 시스템 논리로 보면, 오히려 아세안포럼 의장성명 문제가 더 클 수 있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독도 문제의 경우, 주미 대사관 쪽이 일부 해이했던 측면은 있으나, 30년간 누적된 사안이 이번에 터져나왔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는 이유 때문이다. 이에 반해 아세안포럼 건은 △북한의 움직임을 사전에 체크하지 못한 점 △의장 성명 초안 발표 이후 우왕좌왕한 점 △청와대에 책임을 떠넘기는 행태를 보인 점 등이 결격 사유로 부각되고 있다.
더욱이 유 장관의 경우, 외교안보정책조정회의 의장으로서 외교안보 전반의 난조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29일 “유 장관은 아세안포럼, 독도 외에도 쇠고기 파문 이후 그동안 쌓인 게 많다”고 말했다. 청와대의 또다른 핵심관계자는 “외교부 장관을 놔두고 주미 대사에게만 책임을 물을 경우, 최중경 기획재정부 차관, 한진희 서울경찰청장에 이어 ‘3번째 넘버 2 자르기’로 비춰질 수 있다”며 “정부가 ‘넘버 2만 자르냐’는 말이 나올 수도 있다”고 전했다.
이런 측면 때문에 청와대 실무 라인에서는 ‘유명환 장관 책임론’이 빠르게 부상하고 있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이 잦은 개각에 거부감이 강하리라는 점 때문에 최종 향배는 유동적이다. 게다가 이 대통령이 휴가중이어서 그의 의중도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권태호 기자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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