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6일 “10월 말 베이징에서 열릴 아셈 정상회의(아시아·유럽 정상회의)에서 한·중·일 금융 정상회담을 제안하겠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열린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와의 정례회동에서 금융위기 대처를 위한 세 나라 정상회담 개최를 건의받은 뒤, “좋은 생각”이라며 이렇게 말했다고 차명진 한나라당 대변인이 전했다. 이 대통령은 “동아시아가 현재 세계 최고의 외환보유액을 가지고 있다”며 “3국이 힘을 합치면 금융위기를 슬기롭게 이겨나갈 수 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세 나라 금융 정상회담 제안은 이 대통령이 지난 3일 미국발 금융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한·중·일 재무장관 회의 추진을 지시한 것의 연장선으로 보인다. 세계 외환 보유고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동북아 세 나라가 힘을 모아 금융위기의 파고를 헤쳐나가자는 뜻이 담겼다.
이에 앞서 지난 5월 아세안+한·중·일 재무장관 회의에서는 800억달러 이상 규모의 역내 금융안정 기금을 조성한다는 원칙이 합의된 바 있다. 기금이 조성되면, 우리 정부는 이 기금에 일정액의 달러를 내놓아야 하지만, 인출 가능액은 그보다 더 많아 외환보유고가 늘어나는 효과가 생긴다. 이와 관련해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국정감사에서 “올해 안에 (가칭) 아시아통화기금(AMF) 설립에 가시적인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중국과 일본은 소극적이다. 일본 재무성의 한 고위 간부는 “현시점에서 3국 차관급 회담을 개최할 예정은 없다. 기금 조성 필요성을 느끼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고 <요미우리 신문>이 전했다. <신화통신>을 비롯한 중국 주요 관영매체들은 관련 뉴스를 다루지 않고 있다. 이런 태도는 중국과 일본이 각각 외환보유고 세계 1, 2위로 최근 원-달러 환율이 가파르게 치솟는 한국에 비해 자국통화의 가치하락 우려가 적어 역내 기금 설립 필요성을 상대적으로 덜 느끼기 때문이다. 특히 외환보유고가 1조8천억 달러에 이르는 중국으로선 800억달러 기금조성이 금융위기 때 자국에 별 도움이 안 되는데다, 현재 바깥의 금융위기보다 국내 경기속도 조절이 더 급해 한국과는 처지가 다르다.
이에 따라 기획재정부도 “내년 5월 아세안+7개국 재무장관 회의 때 마무리를 짓는 것을 목표로 논의를 가속화하는 것”을 현실적 목표로 삼는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도 “3국 재무장관 회의는 아직 구상단계로 이제부터 서로 뭘 협조할 수 있는지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라며 “어쨌든 3국 재무장관 회의가 열리면 3국 두루 도움이 될 것”이라며 원론적 수준에서 언급했다.
권태호 박민희 기자, 베이징/유강문 특파원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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