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죄없는 방한 의미없다” 국내여론 강해 한국방문 쉽잖을듯
아키히토 일왕의 한국 방문 문제는 이명박 대통령이 적극적인 관심을 표명한 한-일 외교 현안 중 하나다. 이 대통령이 일왕 방한 초청 의사를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대통령 당선인 신분이던 2008년 2월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도 “일왕의 한국 방문에 어떤 제한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해 4월 방일해서 아키히토 일왕을 만난 자리에서도 초청의 뜻을 밝혔다고 일본 언론이 보도했지만, 청와대 쪽은 부인한 바 있다.
앞서 김대중 전 대통령도 2002년 한-일 월드컵 개막식에 일왕을 초청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그 이후 터진 역사 교과서 문제 등으로 두 나라 관계가 불편해지면서 유야무야됐다. 노무현 정부 시절엔 일왕 대신 왕세자의 방한을 두고 한·일 정부 사이에서 물밑 협상이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일왕의 방한 문제는 두 나라 사이에 수많은 전제조건이 깔려 있어 성사되기가 쉽지 않은 문제라는 게 한-일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니시노 준야 게이오대 교수(한국정치 전공)는 15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내년은 한-일 관계 100주년이라는 특수한 해인데 이때 ‘천황’이 방문하게 되면 과거사 문제에 대해 사과나 반성을 요구하는 한국 내 여론이 당연히 높아진다”며 “이를 고려하면 천황의 방한은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천황 방문의 상징성은 매우 크지만 역사 교과서 문제나 독도 문제가 터지면 크게 빛이 바랜다”며 “따라서 한-일 정상간 과거사 문제에 대한 실질적인 합의가 이뤄진 뒤 방한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실제 1992년 아키히토 일왕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도 일본의 보수파와 우익세력들이 “천황이 중국에서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했다”고 강력히 반발해 중-일 관계가 악화되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중국과 달리, 한국은 일왕의 이름으로 자행된 식민지배를 직접 경험했기 때문에 일왕의 사죄 없는 방한은 의미가 없다는 여론이 한국 안에서는 강한 게 사실이다.
도쿄/김도형 특파원 aip209@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