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감세
이명박 대통령은 글로벌 재정위기를 복지 탓으로 돌렸다. 그러면서 나라 곳간을 지키려면 복지 포퓰리즘을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위기의 주범이 과연 복지일까? 사실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나라의 대부분은 복지가 아니라, 지나친 감세로 인한 세수 부족과 지속적인 경상수지 적자, 단일통화 체제, 부동산 거품 붕괴 등 전혀 다른 데 원인이 있었다.
위기의 진앙지인 그리스의 재정적자 원인엔 비대한 공공부문과 관대한 노후 연금체계도 있지만, 핵심은 취약한 세수 기반에 있다. 그리스는 지하경제가 국내총생산(GDP)의 25%에 이를 정도로 세금 누수가 심각한 상황에서도 2004~2007년 법인세율을 35%에서 25%로 무려 10%포인트나 낮췄다. 개인소득세율의 면세점을 높여 세금을 내지 않는 사람들을 늘린데다 친척 간 부동산상속세 폐지 등 여러 감세정책을 폈다. 이 때문에 세입이 지출을 따라잡지 못하는 구조가 고착화됐다.
일본과 미국도 비슷하다. 일본은 1990년대 장기 불황 타개책으로 소득세 최고세율을 50%에서 37%로 낮추는 등 10년 동안 6차례나 감세 대책을 내놨다. 10년 사이 소득세와 법인세 세수는 거의 절반 가까이 줄었다. 그런데도 대대적인 사회기반시설(SOC) 공사와 함께 고령화로 인한 사회보장비 지출이 늘어나면서, 나랏빚이 국내총생산의 200%를 넘어섰다. 미국도 80년대 레이건 행정부 때부터 지속된 감세로 인한 세수 부족분이 지출 확대분보다 더 큰 상태가 지속되면서, 결국 국가신용등급 하락이란 치욕을 보게 됐다. 여기에 또 이라크, 아프간 전쟁으로 인한 막대한 재정 지출 확대가 더해졌다.
비교적 재정이 양호했던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금융위기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눈덩이처럼 재정적자와 나랏빚이 늘어났다. 배경엔 지속적인 경상수지 적자가 있다. 적자를 메꾸려면 궁극적으로 어디선가 돈을 빌려와야 했기 때문에 외채와 부채가 늘 수밖에 없었다. 특히 포르투갈의 경우엔 2000년대 들어서 경상수지 적자가 국내총생산의 10% 안팎이라는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한때 ‘셀틱 호랑이’로 불린 아일랜드가 은행위기에 이은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배경엔 부동산 거품이 있다. 아일랜드는 2007년 국내총생산의 0.1%에 이르는 재정흑자와 25%의 낮은 국가 부채를 자랑했지만, 지난해엔 재정적자와 국가 부채가 각각 31.9%, 99.4%로 재정이 파탄에 이르렀다. 주택건설투자에 성장을 의지해왔던 경제가 2008년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순식간에 나라살림을 거덜낸 것이다.
홍헌호 시민경제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2000년대 들어 유럽과 미국에서 복지는 거의 늘지 않으면서 감세는 유행처럼 번졌다”며 “재정이 취약한 상태에서 금융위기가 터져 여러 나라가 무너진 것”이라고 말했다.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