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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대통령실

제멋대로 ‘외교 관례’ 만드는 청와대

등록 2013-10-11 20:14수정 2013-10-11 22:26

현장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10일 오후 브루나이에서 열린 동아시아정상회의(EAS)에 참석한 뒤 리커창 중국 총리,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을 각각 따로 만나 환담했다. 두 사람 모두 자국 정상은 아니지만, 북핵 등 한반도 문제에 영향력이 큰 인사들이라는 점에서 대화 내용에 모든 언론이 촉각을 세웠다.

환담이 끝난 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로 이동하는 전용기 안에서 청와대 관계자는 “오늘 두 분과 환담했다는 사실 외엔 말씀드릴 게 없다. 미국이나 중국 쪽과도 합의된 내용”이라고 전했다. 외교 관례를 이유로 환담 시간이나 내용, 형식 등을 밝히지 않겠다는 설명도 뒤따랐다.

하지만 청와대는 환담 전에 대화 의제 등이 담긴 자료를 미리 기자들에게 배포했다. 외교 관례였다면 미리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이날 저녁 외신에는 케리 장관이 외신기자들을 만나 박 대통령과 나눈 대화 내용을 설명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케리 장관이 박 대통령에게 북한에 대한 단호한(firm) 접근에 사의를 표했고, 중국도 북한이 핵을 포기하도록 노력하고 있다는 설명을 했다는 것이다. 정말 비공개에 합의한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당황스러운 일은 또 있었다. 동행한 기자들이 박 대통령과 케리 장관의 악수 장면을 찍었다. 청와대는 “정상이 악수하는 장면은 통상 정상회담을 상징하는 게 외교적 관례다. 케리 장관과는 환담한 것이니 되도록 마주앉은 장면을 사용해 달라”고 요청했다. 전직 외교관에게 물어보니 그런 관례는 들어 보지 못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지난 7일 박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의 회담 결과를 설명할 때도 청와대는 ‘최근 두 나라와 사이가 좋지 않은 일본에 대한 대화가 있었느냐’는 질문에 “제3국과 관련된 이야기는 공개하지 않는 게 외교적 관례”라고 답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불과 일주일 전인 지난달 30일 박 대통령과 척 헤이글 미국 국방장관의 면담 내용을 전하면서 일본 지도자들에 대한 박 대통령의 신랄한 비판을 고스란히 공개한 바 있다.

사정을 들어보니 중국이 자국의 총리와 미국의 장관에 대한 의전 등을 달리 요구해, 청와대로선 이런저런 오해를 피하기 위해 고육지책을 택한 듯하다. 세계 패권 경쟁의 두 축인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 외교를 벌여야 하는 정부의 속앓이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다만 국민들에게 사정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고 손쉽고 자의적인 ‘외교적 관례’를 갖다 붙이는 일만은 그만했으면 한다.

자카르타/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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