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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의 통일 대비론과 2014 통일준비위원회

등록 2014-03-17 14:06

‘통일은 대박이다‘라고 적은 광고판이 지난 2월 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 한복판 타임스스퀘어에 내걸렸다. ‘통일은 대박이다‘라는 말은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6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사용해 유명해진 문구다. 타임스스퀘어 광고판에 오른 ‘통일은 대박‘ 문구는 7개 국어로 쓰였다. 영어, 프랑스어, 중국어, 러시아어, 이탈리아어, 독일어, 스페인어다. 2014.2.5 (뉴욕=연합뉴스)
‘통일은 대박이다‘라고 적은 광고판이 지난 2월 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 한복판 타임스스퀘어에 내걸렸다. ‘통일은 대박이다‘라는 말은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6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사용해 유명해진 문구다. 타임스스퀘어 광고판에 오른 ‘통일은 대박‘ 문구는 7개 국어로 쓰였다. 영어, 프랑스어, 중국어, 러시아어, 이탈리아어, 독일어, 스페인어다. 2014.2.5 (뉴욕=연합뉴스)
곽병찬 대기자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49
‘통일 대비’한다며 유신시절 대통령까지 마음대로 뽑아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준비위’…정권에 이용하지 말길
어떤 통일이든 상대가 있기 마련입니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죠. 그런데 요즘 통일을 향해 혼자서 달려가는 속도는 불가사의할 정도입니다. 게다가 이 정권이 하는 일들은 한결같이 통일과는 반대 방향인데, 당신은 ‘통일 대박론’에서 ‘통일준비위원회’로, 나아가 새로운 ‘통일 독트린’까지 낸다고 하니, 도대체 정체를 알 수가 없습니다. 더 이상 부친 시절을 생각하고 싶지 않은데, 자꾸 그때 그 시절이 연상되기만 합니다.

 유신헌법에는 이상한 기관이 하나 포함돼 있었습니다. 총통제를 뒷받침하는 최고의 헌법기구, 통일주체국민회의가 그것입니다. 아시겠지만 그 권능을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2000~5000명 이하의 대의원은 대통령을 선출하고, 국회의원 정수의 3분의 1을 선출하며, 헌법 개정안을 최종 확정합니다. 권한의 맨 앞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통일 관련 중요 정책의 결정이나 변경 사항 의결’이지만, 그건 이 기관을 설치하기 위한 겉치레 명분일 뿐입니다. 이 기관의 의장은 현직 대통령입니다. 바로 그 현직 대통령이 차기 대통령을 선임하는 게 이 기관의 가장 중요한 임무입니다. 통일을 명분 삼아 대통령을 마음대로 해먹을 수 있게 만든 기구였던 것입니다.

 이 기구는 유신헌법 발효와 함께 부친을 대통령으로 선출했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가 체육관 선거를 앞두고 피살당하자, 이 기구는 전두환씨를 새 대통령으로 선출합니다. 12·12 군사반란과 광주 학살을 저지른 전씨가 이 기구를 통해 대통령이 되었던 것입니다. 전두환은 유신 체제 극복을 앞세워 유신헌법을 폐지하지만, 통일주체국민회의식 대통령 간접선출 방식만은 5공 헌법에 그대로 따왔습니다. 상설 기구만 없앴을 뿐이죠. 이 모든 걸 가능하게 한 명분이 통일 대비론입니다.

 당시 유신헌법을 성안했다고 하여 통일주체국민회의가 선출하는 유정회 국회의원이 됐던 사람이 한태연 전 서울대 법대 교수입니다. 그는 2001년 한국헌법학회 주최 학술대회에서 “유신헌법은 박정희가 구상하고 신직수·김기춘이 안을 만들었다”고 증언합니다.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갈봉근 전 중앙대 교수와 함께 법무부에 가보니 신직수 법무부 장관과 김기춘 과장이 주동이 돼 법안을 모두 만든 상태였으며, 신 장관은 ‘골격은 손댈 수 없다’고 해 자구 수정 작업만 했다.” 신씨는 죽었지만, 유신헌법을 기초한 다른 한 사람은 지금도 당신 곁에서 당신을 보좌하고 있습니다.

 유신헌법의 핵심은 대통령을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선출하는 것과 대통령의 긴급조치권이었죠. 한태연은 “헌법안을 보니 몇 개 조항은 국민의 지탄을 받을 만한 사항임을 직감했으나, 어떻게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욕은 우리가 다 먹고 만든 사람은 다 빠져버렸다”고 말했죠. 박정희 대통령도 후일(1979년 1월) 경제기획원 장관에서 물러난 남덕우를 경제특보로 임명하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하죠. “내가 봐도 유신헌법의 대통령 선출 방법은 엉터리야. 그러고서야 어떻게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겠어? 헌법을 개정하고 나는 물러날 거야.” 민족의 염원인 ‘통일’은 참으로 악독한 자들의 악독한 목적을 합리화하는 데 참으로 자주 악용되곤 했습니다.

유신 정권이 통일을 사골 우리듯 우려먹어 달리 써먹을 방법이 없자, 전두환은 기차 등급에, 비둘기호와 무궁화호 사이에 통일호 등급이란 것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비둘기호가 없어지면서 통일호는 최하 등급의, 여름엔 난방이 겨울엔 냉방이 확실히 되는 가장 느리고 불편한 여객차가 되었습니다. 통일도 사실 그 신세였습니다. 물론 유신 때처럼 장세동 안기부장을 통해 남북 비밀협상을 추진했지만,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처럼 한 건 터뜨리지는 못했습니다. 성공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생각하기도 싫습니다.

 통일을 준비한다는데 누가 말리겠습니까. 대통령의 가장 큰 임무 가운데 하나가 평화통일입니다. 그러나 걱정이 앞섭니다. 몸은 거꾸로 가면서 말은 통일이라고 하고, 통일을 정권 유지의 보약으로 고아내는 데 정통한 분이 비서실장으로 있으니 말입니다. 석연치 못한 점도 한둘이 아닙니다. 대통령 자신이 의장인 헌법기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라는 게 있고, 통일부라는 정부기구가 있고, 민간 기구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란 것도 있습니다. 대통령이 위원장인 민관 협력 통일준비위가 떴으니 이제 이런 기구들은 어디에 써먹을런지요. 통일준비위 구상 발표 전날 민화협이 추진하던 대북 비료 지원 계획을 통일부가 돌연 중지시킨 것도 우연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가장 믿을 수 없는 건 국정원 문제입니다. 전례로 보건대 통일준비위의 팔다리 혹은 머리 기능까지 할 기구는 국정원입니다. 그런데 국정원은 선거 개입, 정치 공작 그리고 남파 간첩 조작 등 온갖 더러운 짓들을 다 했습니다. 남재준 국정원장은 지난해 연말 간부 모임에서 “2015년에는 북한이 자유 대한민국 체제로 통일이 돼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죠. 급변사태 혹은 무력에 의한 흡수통일을 예고한 것입니다. 잠꼬대처럼 들렸던 이 말이, 요즘 당신이 하고있는 속도전을 보면서 허튼말로 들리지 않게 됐습니다. 무언가 끔찍한 계획이 진행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곽병찬 대기자
곽병찬 대기자
 레이먼드 오디에어노 미국 육군참모총장은 13일 한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긴급 상황 가운데 가장 위험한 사태가 “한반도에서의 전쟁”이라고요. 말마따나 그런 전쟁은 “오판에 의해 도발”될 수 있으며 그건 한국과 미국에 “극도로 어렵고 위험한 일이 될 것”입니다. 제발 통일을 놓고 장난치거나 정권 놀음에 이용하지 말기 바랍니다. 앞에선 통일을 외치면서 실제로는 화약고 앞에서 불장난을 하는 것 같아 불안하기만 합니다.

 곽병찬 대기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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