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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대통령실

[현장에서] 시스템 무력화하는 박 대통령의 ‘만기친람’

등록 2014-03-17 20:34수정 2014-03-17 22:36

석진환 기자
석진환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17일 직접 주재하기로 했던 규제개혁장관회의를 돌연 20일로 미뤘다. 관련 부처 장차관 등 60여명의 참석자는 하루 전날 연기를 통보받았다.

청와대가 회의 연기를 결정한 16일 오후, 김동연 국무총리실 국무조정실장은 다음날 회의 내용을 기자들에게 브리핑하고 있었다. 장관급 주무 책임자가 회의 연기 사실을 모르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청와대는 “현장 목소리도 듣고,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밝히려면 민간 참석자를 늘리는 게 좋겠다는 대통령의 뜻이 있었다. 준비 시간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유는 아니다.

박 대통령이 규제개혁장관회의를 직접 주재하겠다고 밝힌 게 1월6일 신년 기자회견 때다. 두 달 넘는 준비 기간이 있었다. 그사이 회의 형식을 고민하지 않다가 전날 갑자기 바꿨다면 ‘주먹구구식’ 국정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사실은 각 부처가 내놓은 결과물이 대통령의 기대에 못 미쳤기 때문일 수 있다. 그래서 대통령이 규제 개혁에 목마른 기업인들을 직접 만나기로 방향을 틀었다는 분석이 더 설득력 있다. 하지만 문제는 남는다. 4~5명 참석 예정이던 기업인을 40명으로 늘리고 이를 언론에 생중계하면 회의가 더 효율적일까? 대통령이 지시해 ‘전봇대’ 하나 뽑았다고 현장의 갈증이 해소되지 않는다는 건 이명박 정부를 경험한 국민들이 더 잘 안다.

대통령이 어떤 사안에 대해 관심과 의지를 갖는 것과, 직접 챙기는 건 차원이 다르다. 현장을 다 챙길 수 없어, 정부 시스템이 존재한다. 이를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관료를 잘 감독, 독려하는 게 곧 대통령의 능력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집권 2년차를 맞아 부쩍 강화되고 있는 대통령의 ‘만기친람’ 행보는 ‘대통령의 선의’와 달리 오히려 기존 시스템을 무력화하는 방향으로 흐르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키우고 있다.

규제 개혁만 해도 그렇다. 박 대통령이 규제개혁장관회의를 신설해 직접 주재하기로 하면서 기존 대통령 직속 규제개혁위원회는 의미 없는 기구가 됐다. 민간 위원장은 지난달 초 사표를 냈고, 정부 쪽 실무자인 국무조정실 규제조정실장도 두 달째 공석이다. 박 대통령이 관광진흥확대회의를 직접 주재하면서도, 관광진흥 최일선의 한국관광공사 수장 자리를 3개월 넘게 비워두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박 대통령은 통일준비위원회를 신설해 스스로 위원장도 맡는다. 그러면 기존 헌법 기구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는 존재 이유가 없어진다. 통일 관련 주무부처인 통일부는 “할 일이 없다”는 자조에 빠진 지 오래다. 대통령이 직접 나설 경우, 기존 시스템이 어떻게 흔들릴지에 대해 고심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출범 1년을 맞아 발표된 ‘경제개혁 3개년 계획’ 담화문 작성 과정에서 기획재정부가 톡톡히 망신을 당한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기재부의 사전 설명과 박 대통령의 발표가 달랐고, 당일 예정된 현오석 부총리의 브리핑은 돌연 취소됐다.

대통령의 ‘만기친람’에 따라 기존 조직이나 계획이 뒤집히는 일이 잦으면, 행정부 시스템은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관료들은 청와대의 눈치와 대통령의 의중만 살피게 될 것이다. 시스템을 움직이는 건 사람이지만, 그 사람이 박 대통령 ‘1인’이어서는 곤란하다.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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