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때 미군이 불법 반출한 대한제국 국새 등 9점
청와대, “미군 반출” 말바꿔 “북한군 약탈로 분실된 것”
청와대, “미군 반출” 말바꿔 “북한군 약탈로 분실된 것”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25일 한국 방문을 계기로 돌려주기로 한 대한제국 국새 등 우리 문화재 9점에 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는 가운데, 청와대가 한국전쟁 당시 미군에 의해 불법 반출됐던 이번 회수 문화재를 “북한군의 약탈로 분실된 것”이라고 밝혀 논란이 예상된다. 지금껏 문화재청은 이번 회수 문화재에 대해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반출한 것”이라고 설명해왔는데, 이번에 청와대가 ‘북한군의 약탈’을 구체적인 분실 원인으로 지목한 것이다.
주철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24일 오바마 대통령 방한 관련 브리핑에서 “오바마 대통령 방한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온 소중한 우리의 문화재 9점을 정식으로 인수하는 간략한 행사가 있을 것”이라며 “대한제국 국새인 ‘황제지보’의 경우 1897년 대한제국의 성립을 계기로 고종 황제가 자주독립 의지를 상징하기 위해 특별히 제작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국가적 존엄과 국민적 자긍심을 상징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주 수석은 이번 회수 문화재에 대해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의 덕수궁 약탈로 분실된 국새와 인장 중 일부라는 사실이 입증되었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한겨레>가 ‘북한군의 덕수궁 약탈로 분실된 문화재라는 사실이 입증됐다’고 판단한 근거에 대해 문의하자,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은 “해당 문화재가 미국에 반입될 당시 반입자가 작성한 ‘관세 기록’을 보면, ‘북한군이 덕수궁에서 (해당 문화재를) 약탈해 가지고 가다 방치해 흘린 것을 습득한 것’이라는 취지의 기록이 남아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같은 관세 기록을 ‘문화재 분실의 원인=북한군의 약탈’의 근거로 삼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번 9점의 문화재를 미국으로 불법 반입한 이는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미 해병대 장교인데, 그의 자의적인 진술일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 ‘관세 기록’의 내용은 지난해 미국 국토안보부 수사국이 이번 문화재 9점을 압수할 당시 이를 보관하고 있던 이들의 진술과도 배치된다. 이번 ‘황제지보’ 등 인장 9점을 보관하고 있던 이는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서 거주하는 미국 해병대 장교의 후손이었다. 압수 당시 장교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이 장교의 후손은 “고인이 ‘1950년 서울 수복 때 덕수궁에서 인장을 발견해 미국으로 가지고 왔다. 당시 덕수궁은 이미 중공군과 북한군이 철수하면서 문화재가 남아있지 않았지만, 이 인장들은 구덩이에 묻혀 있어서 손에 넣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고 밝힌 바 있다.
25일 오후 한국 도착 뒤 경복궁 근정전을 찾은 오바마 대통령은 ‘어보가 놓여있던 탁자와 상자’에 대한 설명을 들은 뒤 몇몇 미국 취재진을 향해 “(이번에 돌려준) 어보는 한국전쟁의 혼란 속에서 미국에 불법적으로 온 건데, 어떤 나이 많은 미국 할머니의 양심적인 행동으로 (한국에) 돌아올 수 있었다. 우리가 가져온 물건이 한국인들에게는 이처럼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앞서 지난해 9월에는 역시 한국전쟁 중에 미국으로 반출된 ‘호조태환권’이라는 화폐 교환권 인쇄 원판이 미국 당국과의 수사 공조를 통해 국내에 반환된 바 있다. 반환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 ‘문정왕후어보’와 ‘현종어보’도 지난해 5월 문화재청의 수사요청 이후 지난해 9월 국토안보 수사국이 압수했으나 소장자에 대한 형사적 처벌 검토 등으로 국내 환수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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