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19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대국민 담화 발표 도중 희생자의 이름을 부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정용 기자,
뉴스분석 박 대통령 ‘세월호 대책’ 담화
정부조직 수술 오랜 논의 필요한데
세월호 참사 한달만에 ‘밀실’서 결정
전문가·시민사회와 공감대도 없어
정부조직 수술 오랜 논의 필요한데
세월호 참사 한달만에 ‘밀실’서 결정
전문가·시민사회와 공감대도 없어
박근혜 대통령은 19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사고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최종 책임은 대통령인 저에게 있다”고 사과했다. 담화 끝 무렵에는 세월호에서 다른 이들을 위해 숨진 이들의 이름을 부르다 눈물을 흘렸다. 세월호 참사 34일째의 ‘대통령 눈물’이었다.
박 대통령이 이날 내놓은 대책도 이미 공언했던 국가안전처 신설 외에 해양경찰청 해체, 안전행정부 및 해양수산부 기능 축소, 공직사회 인사 제도 혁신, ‘관피아’(관료+마피아, 민관 유착) 철폐 방안 등 대대적인 내용이다. 퇴직 관료는 3년 이상 소속 부처 유관 기관·단체에 취업할 수 없게 한 공직 인사 혁신안 등에 대해서는 예상보다 강도가 세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이번에 내놓은 방안이 옳으냐 그르냐를 떠나 그 형식과 절차 면에서 적지 않은 문제점을 드러냈다. 이번 담화는 대통령 혼자 단상에 서서 일방적으로 쏟아내는 ‘원맨쇼’에 가까웠다. 박 대통령의 표현대로 ‘국가개조’급으로 나온 혁신안들은 찬반양론으로 나뉘는 부분도 있고, 대부분의 내용이 정부조직법 개정 등 국회에서 처리가 이뤄져야 해 야당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그런데 별다른 협의 절차 없이 충격요법의 ‘깜짝쇼’ 형태로 대통령이 발표해 버렸다. 청와대가 결론을 내리고, 국회는 이를 처리하라는 식이다. 야당이 세부안을 꼼꼼히 따지기 시작하면, 정부 출범 초기처럼 ‘정부조직 개편안 통과를 시켜주지 않는다’며 야당을 맹비난하던 박 대통령의 모습이 재현되는 건 아닐지 우려되는 대목이다.
당사자인 세월호 유가족이나 실종자 가족은 물론 각계 전문가나 시민사회와의 토론이나 공감대도 없었다.
이와 함께 ‘밀실’에서 결정된 방안이 세월호 참사 이후 불과 한 달여 만에 나왔다는 것도 또다른 우려점이다. 박 대통령이 이날 내놓은 방안들이 누구와 어떤 과정을 거쳐 나왔는지에 대해 청와대는 밝히지 않고 있다. 정부조직 전반에 대해 오랜 논의가 필요한 사안을 ‘벼락치기’ 하듯 급하게 서둘러 냈다. 사고의 근본적인 원인이 뭔지에 대한 진상조사를 건너뛰고, 포퓰리즘적 성격이 짙은 ‘해양경찰청 해체’, ‘관피아 근절’ 등의 방안을 급하게 쏟아낸 것에 대해 ‘선거용 아니냐’는 의혹이 일 수밖에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또 20여분 동안 원고지 58장에 이르는 긴 담화문을 읽으며 대대적인 변화를 예고하면서도 기자들의 질문은 허용하지 않았다. ‘눈물’은 있었으나 ‘소통’은 없었던 것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일방적으로 전달하고 마는 ‘불통’ 패턴에서 전혀 벗어나지 않았다. 만일 기자들의 질문이 있었다면 ‘청영 방송’(청와대의 방송뉴스 내용 개입) 논란이 일고 있는 <한국방송> 사태, 최근의 잇따른 공안·측근 인사 대거 기용 이유, 세월호 수습 과정의 정부 대처 잘못에 대한 생각 등 곤혹스러운 질문을 마주할 수밖에 없는데, 이런 질문의 장을 원천봉쇄한 것이다.
청와대와 박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를 통해 기존의 국정운영 기조를 반성하고 ‘환골탈태’하기보다는, ‘대통령의 눈물’이라는 다분히 감성적인 접근방식을 통해 위기를 넘기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다.
박 대통령 특유의 ‘질책과 엄단’은 이번 담화에서도 되풀이됐다. “해경은 본연의 임무를 다하지 못했다”, “안전행정부도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 “해양수산부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등의 질책이 쏟아졌다. 여당 지도부에서는 “국민의 안전과 생명, 재산을 지켜주지 못하는 정부 조직은 (앞으로도) 없애버리겠다”(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한발 더 나간 맞장구가 나왔다.
이처럼 하부 국가기관은 질책하면서도 정작 사고 초기 청와대의 대응 잘못, ‘청와대는 컨트롤타워가 아니다’라는 발언, 자신이 주도한 안전행정부 중심의 재난 대응 시스템 실패 등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사과’는 있었지만, ‘반성’은 없었던 것이다. 석진환 김외현 기자 soulfat@hani.co.kr
같은 날 오후 전남 진도군 진도군청 세월호 사고 범정부사고대책본부에서 실종자 가족들이 대통령 담화에 대한 기자회견을 마친 뒤 눈물을 닦고 있다. 실종자 가족들은 대통령 대국민 담화에 실종자와 가족에 대한 언급조차 없었다며 마지막 한 명까지 모두 수색해 구조해 줄 것을 호소했다. 진도/김태형 기자 lee31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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