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박대통령 스스로 국정공백 초래
“유 장관, 평소 대통령에 직언”
“유 장관, 평소 대통령에 직언”
박근혜 대통령이 17일 서남수 교육부 장관과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면직을 재가했다. 후임 장관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대통령이 현직 장관에게 면직을 통보한 것은 퍽 이례적이다. 2기 내각 인선에 3개월을 보낸 박 대통령이 이번엔 스스로 국정공백을 초래하면서까지 기존 장관을 면직 처분하는 이유가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내각에 사람을 쓰는 것도, 쓴 사람을 내보내는 것도 매끄럽지 못하기 때문이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이와 관련해 “지난달 개각 발표 때 (해당 장관들이) 이미 사표를 제출한 터라, 예정된 절차를 진행한 것일 뿐 다른 의미는 없다”고 말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국무회의 자리에서 마주치면 어색하고, 물러날 장관이 국회에서 답변하는 것도 적절치 않다고 판단한 것”이라며 “김기춘 비서실장이 해당 장관들에게 전화로 면직 사실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물러나는 장관도 후임자가 확정될 때까지는 자리를 지키는 게 관례였다. 박 대통령은 지난 4월 정홍원 총리의 사퇴 발표 이후 “(후임자 임명 전까지) 국정공백을 막기 위해 총리직을 계속 수행해달라”며 스스로 ‘업무공백에 대한 우려’를 밝힌 바 있고, 김관진 국방장관은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발령을 받은 뒤에도, 후임 한민구 장관이 취임할 때까지 국가안보실장과 국방부 장관을 겸직하기도 했다. 또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 후임 장관 5명을 임명할 때는 임명 사실을 다음날 공개했던 것과 달리, 면직 사실은 당일 신속하게 공개한 점도 석연찮다.
이와 관련해 관가에서는 2기 내각이 출범하는 시점에 청와대와 잦은 마찰을 빚은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배제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날 오전에 퇴임식을 연 서남수 교육부 장관과 달리, 유 장관은 퇴임식조차 열지 않고 떠났다. 문체부 내부에선 유 장관이 세월호 참사 뒤 국무회의에서 ‘내각 총사퇴’를 제안하는 등 박 대통령을 불편하게 하는 발언을 자주 한 것이 이번 면직의 이유라는 말들이 많다. 국무회의에 참석했던 한 인사는 “대통령의 말에 대해 유 장관이 동의하지 않는 의견을 내고, 대통령이 다시 원래 취지의 말을 반복하는 일들이 있었다”고 전했다. 대부분 장관들이 박 대통령의 말에 ‘토’를 달지 않아, 유 장관의 행태는 더욱 도드라지게 보였다는 것이다.
또 유 장관이 산하 국실장·기관장 인사가 늦어지는 등 장관 인사권이 제약되고 있다는 불만을 공·사석에서 자주 드러냈다는 게 경질 사유라는 관측도 있다. 청와대가 국장급 인사까지 좌우해 장관들이 인사를 할 수 없다는 내용은 여러 차례 거론된 바 있다.
문화계와 학계 일부에서는 세월호 참사 뒤 청와대가 추진하려던 국민의식 개혁 시국강연회를 유 장관이 거부한 게 직접적 계기가 됐다는 설도 제기된 바 있다.
문체부는 ‘세월호 참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부처이고, 유 장관도 별다른 실수가 드러난 적이 없었지만, 지난 6월 말 교체 대상에 포함됐다. 그는 당시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청와대에서 나를) 스트레스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난 자유를 위한 한걸음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한편, 청와대는 이날 2기 내각 출범을 밝히면서 부실 인사에 대한 문책은 언급도 없고, 장관 후보자 낙마 과정에 대해서도 면피성 발언만 내놓았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사생활 문제 공개를 앞두고 돌연 사퇴한 정성근 후보자와 관련해 “정 후보자에 대해 야당과 여당, 청문위원들이 (청와대에) 의견을 전달해왔다. 비서실장이 다 듣고, 대통령께서 바로 판단할 수 있도록 보고를 올린 결과”라고 말했다. 여야 반대에도 박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하려 했던 것에 대한 설명은 뺀 채, 마치 비서실장이 보고를 제대로 하고 박 대통령이 여론을 받아들인 것처럼 설명한 것이다. 박 대통령이 애초 정 후보자 임명을 강행하려 한 것 아니었느냐는 지적에 민 대변인은 “(제기된 의혹에) 시차가 있었다”며 명확한 답변을 피했다.
석진환 노형석 기자 soulf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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