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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대통령실

대통령의 ‘사생활’이 국민보다 중요하답니까

등록 2014-08-11 14:00수정 2014-08-11 18:02

이 정부가 혼신을 다해 하는 짓이란 진실을 은폐하는 것…
국가적 참사 때 사라진 대통령 행적이 ‘국가 기밀’입니까?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침몰 당일인 4월16일 오후 5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서 보고를 받고 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오전 10시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첫 서면보고를 받은 뒤 이때까지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행적이 공개되지 않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침몰 당일인 4월16일 오후 5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서 보고를 받고 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오전 10시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첫 서면보고를 받은 뒤 이때까지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행적이 공개되지 않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곽병찬 대기자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70

지금 이 나라에선 살아가는 것 자체가 하루하루 죽음의 전장입니다.

어른들은 먹고살기 위해 바동바동 삶의 절벽을 오르고, 힘겨워 손을 놓는 순간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집니다. 청년들은 국가를 지키겠다고 군대에 갔다가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오거나, ‘사회 부적응자’ 혹은 ‘심신박약자’ 상태로 돌아옵니다. 때론 폭력에 찌들어 영혼을 상실합니다. 학생들은 살인적인 경쟁교육 속에서 꿈도 희망도 재능도 잃고 오로지 공부하는 기계가 됩니다. 낙오해 좌절하거나,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합니다. 학창 시절 최고의 추억만들기인 수학여행은 종종 참사의 길이 되기도 합니다.

그 어디에도 이 나라 정부는 없습니다. 진상을 밝혀 책임자를 가려 처벌하지도, 대책을 마련하지도 않습니다. 이 정부가 혼신을 다해 하는 짓이란 오로지 사고 원인, 사고 진행 과정, 정부 대처 등 사건의 진실을 은폐하는 일뿐입니다. 참사가 터져도, 총기난사와 집단폭력이 터져도, 아이들이 잇따라 죽어가도 돈으로 얼버무리거나, 막무가내로 버티거나, 시간이 지나 잊혀지기만을 기다립니다. 당장 저들에게 날아올 불똥을 피하는 게 하는 일입니다.

이 중에서도 ‘세월호 참사’는 특별합니다. 그들이 목숨 걸고 숨기려는 건 다름 아닌 대통령의 사생활입니다. 300여명이 수장되어 가고 있을 때 종적을 감췄던 대통령의 7시간, 수많은 생명을 구조할 수 있는 그 귀한 시간 동안, 대통령의 행적을 감추기 위해 이 나라 위정자들은 아예 국정까지 포기하고 있습니다. 슬금슬금 삐져나오는 의혹의 연기를 막기 위해 온몸을 던지고, 전세계로 퍼져나가는 풍문을 덮기 위해 길거리 광고용 풍선처럼 칼을 마구잡이 휘두르고 있습니다.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7월7일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관진 국가안보실장과 이야기하고 있다. 김 실장은 ‘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이 어디에 있었냐’는 야당 의원의 질문에 “모른다”고 답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7월7일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관진 국가안보실장과 이야기하고 있다. 김 실장은 ‘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이 어디에 있었냐’는 야당 의원의 질문에 “모른다”고 답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이런 과잉방어 속에 대통령의 사생활은 이제 외교문제로 비화했습니다. 여기저기 피어오르던 의혹의 얼개를 일본의 극우 성향 일간지 <산케이신문>이 <조선일보> 칼럼 등을 인용해 보도했습니다. 청와대는 화들짝 놀랐습니다. 윤두현 홍보수석은 7일 “민형사상 책임을 반드시, 끝까지 묻겠다. 엄하게 강력하게 대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끝까지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최고의 으름장이었습니다. 그 직후 검찰은 민간단체들의 고소를 빌미로 기사를 쓴 가토 기자에게 소환장을 날렸습니다.

이틀 뒤인 9일, 11개월 만에 만난 한국과 일본의 외교장관은 다름 아닌 이 문제를 놓고 입씨름을 벌였습니다. 윤병세 장관은 “산케이신문이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근거 없는 유언비어를 보도하고, 이웃나라 국가원수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했다”고 항의했습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은 가토 기자가 검찰 소환을 당한 데 대해 “저로서는 일·한 양국의 관계에 영향을 주진 않을지, 보도의 자유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걱정이 되는 것이라, 주시하고 있다”고 대꾸했습니다. 말이 걱정이지, 강력한 외교적 항의입니다.

독도처럼 영토문제도 아니고, 일본군 위안부처럼 반인륜적 범죄도 아닙니다. 집단자위권 같은 안보문제도 아닙니다. 쌓이고 쌓인 현안도 아니고, 수많은 생명을 구할 수도 있었던 ‘골든타임’에 실종됐던 대통령의 행적을 놓고 벌이는 논란이니, 전쟁과 같은 삶을 이어가는 아이들, 청년들 그리고 그 부모들은 절망스럽기만 합니다.

법리적으로도 문제가 있습니다. <산케이신문>은 실종된 7시간을 둘러싼 의혹과 함께 정윤회씨를 실명으로 거론한 <조선일보> 논설위원의 칼럼을 저본으로 삼아, 몇 가지 취재한 것을 보태 기사를 작성했습니다. 청와대는 이런 의혹에 대해 한마디 해명도 하지 않았습니다. 박 대통령은 침묵하고, 청와대는 외면했습니다. 그런 침묵과 외면은 의혹을 국내를 넘어 해외로까지 확산시켰습니다. 청와대가 답한 것이라곤 단 한마디뿐입니다. ‘4월16일 박 대통령은 청와대 경내에 있었다.’ 국민을 얼마나 우습게 봤으면 그런 오만불손한 말을 했겠습니까.

솔직히 말해 봅시다. 국가적 참사 때 사라진 대통령의 행적이 ‘국가 기밀’입니까?

세월호 침몰 다음날 당신은 진도에 내려가 사고 현장에 들렀다가 실종자 가족들과 만나고 올라왔습니다. ‘딸랑이 언론’들은 이렇게 떠벌렸습니다. ‘대통령은 상황을 잘 관리하는데 장관과 공무원들이 문제!’ 이런 사기성 보도에 영향을 받았는지, 당신은 환호를 받았고 지지도 역시 올라갔습니다. 정작 가장 중요한 순간에 당신은 자리를 비웠고, 청와대는 홍보에 쓸 만한 동영상만 요구했고, 그사이 정부는 우왕좌왕하고, 해경은 구조는커녕 민간 어선들의 접근까지 통제했습니다. 이 정도로 국민을 속였다면 그에 대한 해명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실종된 대통령의 7시간을 숨기는 데 필사적입니다. 특별법 협상에서 새누리당은 끝까지 특검의 추천과 임명권을 움켜쥐고, 또 진상조사위원회를 허수아비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이완구 원내대표는 한 방송 인터뷰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을 알겠다며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과 정호성 청와대 제1부속실 비서관 등을 세월호 국정조사 청문회 증인으로 채택하려는 야당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청와대 경내의 모든 것을 밝히라는 것이 과연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지 의문”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가원수의 일거수일투족을 낱낱이 밝히는 것은 국가안보 차원에서 납득할 수 없다.”

이 대표도 제정신이 아닌가 봅니다. 국가안보란 내우외환으로부터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일입니다. 당시 수백명의 목숨이 죽어가는 세월호 참사만큼 중요한 국가안보 과제가 어디 있었겠습니까. 그렇다면 다음날 이미 상황이 비극적으로 마감하고 있을 때 진도에 내려간 행적은 무엇으로 설명하렵니까.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가 10일 오후 국회 본청 앞에서 농성중인 세월호 가족대책위 등 유가족들을 만나 세월호 특별법 여야 합의와 관련한 면담 도중 유경근 대변인의 항의를 듣고 있다.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가 10일 오후 국회 본청 앞에서 농성중인 세월호 가족대책위 등 유가족들을 만나 세월호 특별법 여야 합의와 관련한 면담 도중 유경근 대변인의 항의를 듣고 있다.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이 대표의 속마음은 5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말했다는 이 문장에 있는 것 같습니다. “타협할 게 있고 못할 것이 있는데, (대통령 행적 문제는) 진짜 곤란하다.” 세월호 국조특위 여당 간사인 조원진 의원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김기춘 실장이 그것(대통령의 7시간 행적)은 (밝히기) 어렵다고 분명히 말했다” “그것은 대통령의 사생활을 묻겠다는 것 아닌가.”

대통령에게도 사생활은 있고, 사생활은 공적 업무 수행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는 한 보호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유족과 국민이 원하는 건, 긴급하고 중차대한 상황에서 공적 업무를 방기한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점입니다. 그게 사생활 때문인지, 사생활이 부적절했는지 여부는 다음 문제입니다. 그때 당신은 긴급한 업무와 관련해 무슨 일을 했는가, 혹여 그 사생활 때문에 업무를 방기한 것 아닌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책임진 대통령이라면 반드시 답해야 합니다. 시간대별로 동선과 한 일을 국민 앞에 설명해야 합니다. 무슨 경천동지할 일이 있길래 참사를 방치하고, 지금은 이 나라 국정을 표류하게 만드는지 말해달라는 것입니다.

박 대통령이 ‘부적절한 사생활’을 빌미로 채동욱 검찰총장을 쫓아낸 게 불과 10개월 전입니다. 그때 당신과 부하들은 채 총장을 ‘패륜아’ 취급을 했습니다. 그래서 청와대는 물론 국정원까지 불법적으로 채 총장을 사찰했고, 거기서 얻은 정보를 채 총장 축출에 공작적으로 활용했습니다. 그랬던 정권이 대통령의 사생활을 숨기기 위해선 국정도 팽개치고, 국민의 삶도 팽개치고, 외교관계도 흔들고 있습니다. 어디로 가자는 걸까요.

곽병찬 대기자
곽병찬 대기자
영화 <명량>을 보고 나서 당신이 했다는 말입니다. “국가 위기 시에 민·관·군이 합동해 위기를 극복한 경험과 국론 결집을 고취하고 경제 활성화와 국가혁신에 온 국민이 한마음으로 추진하자는 뜻!” 대통령의 사생활을 지키는 데 민·관·군이 일치단결하자고? 그리고 오늘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치가 정치인들이 잘살라고 있는 게 아닌데 지금 과연 정치가 국민을 위해 존재하고 있는 것인가 자문해봐야 할 때입니다.” 대통령이나 잘하십시오. 국정을 꼬이게 만든 게 대통령이란 건, 사생활 방패막이로 나선 새누리당 사람들도 알고 있을 겁니다.

곽병찬 대기자 chankb@hani.co.kr

박래군 “세월호는 시민의 힘으로 사회를 바꿀 수 있는 마지막 기회” [한겨레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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