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14일 오전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으로 입국해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과 인사를 나누는 모습을 박근혜 대통령이 뒤에서 지켜보고 있다.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유족 손잡은 교황 뒤에서 너무나 초라하고 기이했던 표정
교황보다 먼저 그들과 함께 울고 호소에 귀기울여야 할 이
세월호 봉인 풀어야 대통령도 어둠 속에서 벗어날 수 있어
교황보다 먼저 그들과 함께 울고 호소에 귀기울여야 할 이
세월호 봉인 풀어야 대통령도 어둠 속에서 벗어날 수 있어
곽병찬 대기자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71
대통령은 이 나라의 가장 큰 어른입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하고서야 어른의 부재를 뼈저리게 고백했습니다. 어른이 없는 현실을 안타까워했습니다. 참된 어른의 자세를 보여준 교황께 감사를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나이가 많다고 어른인 것은 아닙니다. 지위가 높다고, 한 나라를 이끄는 자라고 어른은 아닙니다. 사랑과 헌신, 관용과 인내, 겸손과 경청 그리고 함께 아파하고 슬퍼하는 마음이야말로 어른의 덕성입니다. 그러면 당신에겐 어떤 덕성이 있는 걸까요. 교황의 뒤 혹은 옆에 있던 당신이 그렇게 초라해 보였던 것은 왜일까요. 교황은 말없이 그저 행동으로 그런 어른의 덕성을 보여줬습니다. 그것은 빛이 되어, 주변의 더럽고 찌그러지고 뒤틀린 것들을 남김없이 드러냈습니다. 그 속에 당신은 있었습니다.
당신에겐 교황 체류기간이 취임 후 가장 힘들고 긴 날들이었을 겁니다. 그렇게도 존재감 없던 적은 없었고, 그렇게 어둡고 초라하고 옹색했던 적은 없었습니다. 세월호 참사 직후 유가족 앞에서 전전긍긍할 때보다 오히려 더 초라했습니다. 교황 방한이 성사됐을 때 당신은 월드컵이라도 유치한 것처럼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지난 4박5일간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이 땅의 어둠, 당신의 어둠을 드러내기만 했습니다. 당신의 남루는 애처로울 정도였습니다.
그 때문이었을 겁니다. 당신은 끔찍한 실수도 저질렀습니다. 14일 오전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한 교황이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과 따듯한 눈길로 손을 잡고 위로할 때였습니다. 당신은 뒤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날 청와대가 공동취재단 이름으로 배포한 사진 중에는 남윤철 단원고 교사의 어머니 송경옥씨가 오열하면서 교황의 위로를 받을 때 모습을 잡은 사진이 있었습니다. 바로 그 사진 속 당신의 표정은 그야말로 끔찍했습니다. 무엇으로도 표현하기 힘든 괴이한 것이었습니다.
물론 착잡했을 겁니다. 당신이 바라보는 가운데 교황 앞에서 쏟는 송씨의 눈물이 무엇을 뜻하는지, 그 눈물은 얼마나 큰 배신감과 고통을 호소하는 것인지, 당신이 어찌 모를 리 있었겠습니까. 그때 그 당혹스러움 때문인지 당신은 그날 청와대에서 교황을 다시 만나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월호 침몰 사고의 희생자와 유가족에게 위로를 전해주시고 기도해주신 데 감사드립니다.” 결단코 당신이 할 말이 아니었습니다. 당신이 해서는 안 될 말이었습니다.
그 위로와 기도는 당신이 해야 했던 것이었습니다. 당신은 그들의 손을 잡고 함께 울고, 그들의 간절한 소망을 들어줘야 했습니다. 그들이 온전히 바라는 진실을 드러낼 수 있도록 당신은 앞장서 조처를 했어야 했습니다. 처음엔 간이라도 빼줄 것처럼 말해놓고는, 당신은 4개월이 지나도록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그들의 뜻을 왜곡하고, 그들을 고립시키려 했습니다. 그래서 아예 유족의 그림자조차 청와대 근처에 얼씬도 못하게 했습니다. 그러고도 이역만리에서 온 손님이 유족들의 북받치는 서러움을 함께하자, 그제야 위로해줘서 감사하다고? 이게 무슨 시추에이션입니까. 아무리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재주가 있다고 해도, 그렇게 악의를 선의로 포장하고, 냉소를 슬픔으로 위장하고, 거짓을 진실인 양 왜곡할 순 없는 일이었습니다.
물론 저의 잘못이 드러났을 때의 민망함에서 벗어나기 위한 임기응변이었겠지만, 아무리 급해도 해서는 안 될 말이었습니다. 당신은 거짓된 선의로 교황까지 속이려 했던 것입니다. ‘저도 당신만큼 그들을 위로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이렇게 믿게 하려 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위선은 오히려 당신의 숨겨진 진짜 얼굴만 드러냈습니다. 사진 속의 그 괴이한 표정처럼 당신의 얼굴에 찌든 얼룩을 고스란히 보여줬습니다.
교황이 도착하기 전 청와대는 당신이 율리아나라는 세례명의 천주교인이라는 사실을 열심히 알렸습니다. 얼마나 독실했는지는 모르지만, 당신은 그의 방한을 앞두고 졸지에 신심 깊은 율리아나가 되었습니다. 한데 당신은 한국 천주교의 역사와 전통에 대해 너무나 무지했습니다. 이 땅에 천주교가 어떻게 전래됐고, 1만여명에 이르는 순교의 역사 속에서 신자들이 지키려던 신앙과 가치가 무엇인지 조금이라도 배우고 마음속에 두었다면, 지금처럼 당신의 세례명을 더럽히지 않고, 세계인 앞에서 민망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을 겁니다.
교황이 시복식에서 천명했던 것처럼 이 나라에서 첫번째 사도는 평신도였습니다. 군함을 타고 온 신부들이 총과 대포를 앞세워 신앙을 강요해 전파된 대다수 나라들과 우리나라의 천주교는 근본이 다릅니다. 조선의 천주교는 깨어 있는 지식인과 억압받는 민중이 자발적으로 받아들여, 부조리한 사회, 적폐에 찌든 조선을 변화시키는 힘과 이상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이 땅에 발을 처음 디딘 중국인 주문모 신부가 들어오기 3년 전 이미 윤지충 바오로 등이 순교를 당한 것은 그런 배경에서였습니다.
이번 시복식에서 복자가 된 황일광 시몬은 백정이었습니다. 그는 이존창 등 남녀나 신분 등 어떤 차별도 두지 않는 이들로부터 신앙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고 합니다. “천당은 이 땅에 하나 있고, 내세에 하나 있음이 분명하다.” 그가 말하는 이 땅의 천당이란, 신 앞에서 모두가 동등하고, 억압과 폭력이 없으며, 가진 것 함께 나누는 그런 교우 공동체였습니다. 그는 신유박해 때 다리가 부서지는 압슬형 속에서도 당당하게 신앙을 지키며 그가 믿던 두번째 천당으로 갔다고 합니다. 그들은 신분사회의 진실, 그 억압과 폭력의 부당함을 누구보다 먼저 깨닫고 이를 혁파하려 한 선각자였습니다. 이런 상식만 숙지했어도 당신은 이 나라를 ‘부패하고 무능한 정부가 권력의 이익만을 좇는’(세월호 희생자 유족 김영오씨) 그런 나라로 몰아가지는 않았을 겁니다.
종교를 떠나 누구나 즐겨 되새기는 성경 구절이 있습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문제는 진리 곧 진실입니다. 당신을 그렇게 초라하게 만든 건 진실을 외면하려 한 데서 비롯됐습니다. 진실을 멀리하고 거짓을 섬기려 한 것입니다. 그러나 거짓과 위선은 진실과 진정성의 빛 앞에서 온전히 드러납니다. 교황이 방한 기간 중 보여준 순정한 진정성의 빛 앞에서 그만 당신의 그런 모습이 드러났던 것입니다.
당신은 진실을 피하려다 보니 어둠 속에 갇혀 버렸습니다. 그 안에 있을 때 편안함을 느낍니다. 갈수록 더 깊은 어둠 속으로 파고들어갑니다. 이제는 어둠에서 벗어나기 바랍니다. 진실 속에서 자유로워지기 바랍니다. 치유와 위로를 받기 바랍니다. 진실은 유족을 짓누르는 세월호 참사의 어둠을 벗겨낼 뿐 아니라, 당신을 가두고 있는 어둠도 벗겨냅니다.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문을 열면 빛이 쏟아져 들어오듯이, 당신이 붙여놓은 세월호의 봉인만 풀면 진실은 밝혀집니다. 당신이 사라진 7시간은 사실 중요한 게 아닙니다. 거기에 세월호의 진실이 있는 건 아닙니다. 당신과 청와대 비서실이 기를 쓰고 덮으려다 보니 의혹과 괴담이 산만큼 커졌을 뿐입니다. 진실은 알라딘의 램프에 갇혀 있는 지니와 같습니다. 지니를 풀어주십시오. 지니, 세월호의 진실은 오히려 당신에게 빛과 사랑을 가져다줄 것입니다.
아직도 첫날의 그 끔찍한 표정과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그 잔상을 지우기 위해 <코이노니아>를 들어봅니다. 교황 방문을 앞두고 노영심씨가 작곡하고, 연예인들이 함께 부른 노래입니다. 다음은 그 가사입니다. 코이노니아(Koinonia)란 친교, 공동체 등을 뜻합니다. 진실로써 소통하고, 진실한 마음을 나누는 것, 그런 사람들의 마을이라는 뜻이겠지요. 이 마을의 밑돌은 바로 그 진실과 진정성입니다.
곽병찬 대기자 chankb@hani.co.kr
당신에게 내 기도를 주고 싶어요
푸르른 꽃씨 같은 사랑의 마음
너와 나는 하나
같은 꿈속에 피어
우린 모두 선물이 되죠 당신에게 내 눈물을 주고 싶어요
따뜻한 그 물결 같은 진실의 마음
아픔 없이 줄 수 없는 엄마의 기도처럼
아름다운 선물이 된다 Koinonia Koinonia
온 세상이 당신 숨결로 하나가 되어
Harmonia Harmonia
온 마음이 당신 길 위에 빛이 되어 당신 앞에 내 그늘을 내려놓아요
잔잔한 그 빛으로 날 채워주지요
더 깊은 곳에 세상, 더 큰 평화가
우리 모두에게 축복이 된다 그대에게 내 눈물이 꽃씨가 될까
그대에게 내 기도가 선물이 될까
너와 나는 하나
같은 꿈속에
우리 모두에게 희망이 된다 Koinonia Koinonia
나의 손이 너의 손 위에 하나가 되고
Harmonia Harmonia
이 땅 위에 그대 평화가 Koinonia Koinonia
온 세상이 당신 숨결로 하나가 되어
Harmonia Harmonia
온 마음이 당신 길 위에 빛이 되어 (반복) 세월호 십자가 순례 마친 웅기 아빠 “약속되지 않은 이별에서 오는 고통이…”
푸르른 꽃씨 같은 사랑의 마음
너와 나는 하나
같은 꿈속에 피어
우린 모두 선물이 되죠 당신에게 내 눈물을 주고 싶어요
따뜻한 그 물결 같은 진실의 마음
아픔 없이 줄 수 없는 엄마의 기도처럼
아름다운 선물이 된다 Koinonia Koinonia
온 세상이 당신 숨결로 하나가 되어
Harmonia Harmonia
온 마음이 당신 길 위에 빛이 되어 당신 앞에 내 그늘을 내려놓아요
잔잔한 그 빛으로 날 채워주지요
더 깊은 곳에 세상, 더 큰 평화가
우리 모두에게 축복이 된다 그대에게 내 눈물이 꽃씨가 될까
그대에게 내 기도가 선물이 될까
너와 나는 하나
같은 꿈속에
우리 모두에게 희망이 된다 Koinonia Koinonia
나의 손이 너의 손 위에 하나가 되고
Harmonia Harmonia
이 땅 위에 그대 평화가 Koinonia Koinonia
온 세상이 당신 숨결로 하나가 되어
Harmonia Harmonia
온 마음이 당신 길 위에 빛이 되어 (반복) 세월호 십자가 순례 마친 웅기 아빠 “약속되지 않은 이별에서 오는 고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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