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12월16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16차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에 참석하려고 김기춘 비서실장과 함께 회의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2일 열린 청와대 비서실 시무식에서 “돌이켜보면 우리 나름대로 노력한다고 하지만 여러 가지 불충(不忠)한 일들이 있어 위로는 대통령님께, 나아가서는 국민과 나라에 많은 걱정을 끼친 일들이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 비서진들이 제대로 대통령을 보좌하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한 것으로, 최근 ‘정윤회 국정 개입’ 문건 파동 등을 염두에 둔 언급으로 보인다.
김 실장은 이어 “청와대에서 국가원수를 모시고 근무하는 우리들의 가슴이나 머릿속에 개인의 영달이나 이익을 위해 이 직위를 이용하거나 활용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며 “충(忠)이란 무엇인가, 한자로 쓰면 중심(中心)이다. 중심을 확실히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기강을 보다 더 확립해야 한다. 군기가 문란한 군대는 적과 싸워 이길 수 없고, 기강이 문란한 정부 조직이나 집단은 효율적으로 일할 수 없다”고 질책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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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김 실장의 발언은 시무식 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이 기자들에게 브리핑을 자청해 소개한 것이다. 청와대 대변인이 ‘대통령’의 발언이 아닌 ‘비서실장’의 발언을 브리핑한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선 박 대통령이 국정 개입 문건 파동으로 여권에서도 사퇴 요구를 받았던 김 실장에 대한 재신임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비서실의 기강을 강도 높게 다잡는 내용의 김 실장의 발언 역시 박 대통령의 ‘윤허’ 없이 공개되기 어렵다는 게 청와대 안팎의 평가다.
김 실장은 또 비서실의 ‘불충’을 질책하면서도, 정작 내부 문서 유출이나 위기 관리 실패 등 비서실의 무능함에 대한 자신의 최종 책임에 대해서는 어떤 언급도 하지 않았다. 지난 2년 동안 스스로 불리한 내용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사태의 책임을 밖으로 돌리곤 했던 청와대의 대응과 닮은 꼴이다.
김 실장은 대신 비서실 직원들에게 “금년에는 모두가 가슴에 손을 얹고 자기 자신을 반성하고, 이곳에서 일한다는 영광이 자기 자신을 위해 있다는 이심(異心), 즉 다른 마음을 품어서는 안 된다”며 “그런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여기 근무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