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 사진공동취재단
청와대가 30일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 중 일부 내용을 겨냥해 공개적으로 “유감”과 “우려”의 뜻을 밝히고 나서면서, 그동안 잠복해있던 전-현 정권 사이의 갈등이 회고록 발간을 계기로 본격적인 충돌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이 전 대통령의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은 다음주 초 발간에 앞서 최근 주요 내용이 언론을 통해 공개됐는데, 청와대가 문제 삼는 부분은 ‘표면적으로는’ 크게 두 곳이다. 2010년 당시 이 대통령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첨예하게 대립했던 ‘세종시 수정안’ 표결을 언급한 대목과, 이 전 대통령 재임 시절 남북 관계 및 ‘비밀 접촉’ 등의 내용을 자세히 기술해 놓은 부분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날 오전 예고 없이 기자들이 있는 춘추관을 찾아 “박 대통령이 (2010년에) 세종시 수정안을 반대한 게 당시 (수정안 처리를 책임졌던) 정운찬 총리를 (차기 대선 주자로 생각해) 견제하기 위해서라고 (회고록에서) 얘기한 것은 사실에 근거했다기보다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 부분에 대해서는 유감”이라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세종시 수정안 얘기가 나왔을 때 박 대통령은 정치적 어려움 속에서 국토균형발전 차원에서 결단을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문제가 (이 전 대통령에 의해) 정치공학적으로 해석되는 게 지금 우리나라나 국민이나 당의 단합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세종시는 이 전 대통령이 2007년 대선 때 박 대통령에게 유세를 요청해 박 대통령도 수십 차례 충청지역 주민들에게 약속했던 사안이고, 이 전 대통령도 대선 승리 이후 세종시 이전은 공약대로 이행하겠다고 여러 차례 확인했다”며 ‘공약을 어기려 했던’ 이 전 대통령 쪽으로 화살을 돌렸다.
청와대는 또 이 전 대통령이 회고록에서 북한이 남북정상회담 대가로 달러와 지원물품을 구체적으로 요구했다는 등 정상회담 추진 비화를 상세히 밝힌 것에 대해서도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이 고위관계자는 “지금 남북대화를 비롯해 외교문제가 민감한데 세세하게 나오는 것이 외교적으로 국익에 도움이 되느냐, 이런 지적은 언론에서도 많이 하고 있다”고 에둘러 불만을 표시했다. 기자들이 “언론뿐 아니라 청와대에서도 우려하고 있는 것인가”라고 되묻자, “제가 우려된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이어 회고록에 남북대화의 전제조건으로 ‘돈거래 얘기’가 나온 것에 대해서도 “(정상회담 대가에 대한 논의 자체가) 놀라운 일이고,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전임 대통령이 불과 몇 년 전 비사를 늘어놓아 남북관계에 부담을 준 것에 대해 불쾌함을 드러내는 한편, 현 정부가 강조해 온 ‘투명한 남북 관계’ 기조를 거듭 강조하기 위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이 전 대통령의 회고록을 정면으로 비판한 청와대의 이번 대응은 박 대통령의 의중을 반영한 것이라는 게 청와대 안팎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대통령의 뜻이 실리지 않았다면 청와대 참모가 전직 대통령의 회고록을 향해 이렇게 날 선 반응을 내놓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박 대통령 지지율 급락 등으로 위기를 겪고 있는 청와대로서도 ‘4대강 사업’과 ‘자원외교’ 등으로 여론이 좋지 않은 전임 대통령에게 각을 세워 차별화를 시도하는 게 정치적으로 손해 볼 게 없다고 본 듯하다. 2010년 세종시 수정안 반대를 관철해 충청권의 폭넓은 지지를 확보했던 때를 다시 환기시키는 것도 나쁠 게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
석진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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