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4일 오전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고 여야가 합의한 공무원연금법 개정안에 대해 “국민들이 기대했던 수준에 미치지 못해서 매우 아쉽게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현장에서 박 대통령과 WP의 인터뷰
한일 관계·사드 등 민감한 사안은 ‘워딩’ 중요한데
영어 보도를 한국말로 재번역해야 하는 아이러니가…
한일 관계·사드 등 민감한 사안은 ‘워딩’ 중요한데
영어 보도를 한국말로 재번역해야 하는 아이러니가…
박근혜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극도로 꺼린다는 건 이미 온 국민이 알고 있다. 임기 반환점을 눈앞에 둔 지금까지, 기자들과 문답을 주고받은 기자회견은 두 번 있었다. 개별 언론이 박 대통령과 단독 인터뷰를 한 적은 없다.
예외적으로 박 대통령은 외국 순방에 앞서 상대국 유력 언론과 종종 개별 인터뷰를 한다. 이전 대통령들도 그렇게 했다. 해외 언론이 국내 언론보다 더 가까운 거리에서 박 대통령과 질문을 주고받는 셈이지만, 그 나라에 한국을 긍정적으로 알리는 것이니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국내 언론이 남북관계 등에 대한 박 대통령의 구상을 해외 언론을 인용해 보도하는 일이 잦은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 일간지 <워싱턴 포스트>가 지난 12일 박 대통령 인터뷰 내용을 보도하고, 국내 언론이 이를 인용한 것도 같은 방식이었다. 방미는 취소했지만 미리 약속된 인터뷰는 취소하기 힘들어 지난 11일 청와대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번 인터뷰는 박 대통령과 청와대의 고질적인 대국민 소통방식 문제를 다시 한번 드러냈다. “한·일 양국의 위안부 문제 협상에 상당한 진전이 있었고, 협상의 마지막 단계에 있다”는 박 대통령 인터뷰 내용은 그 자체로 경색된 한-일 관계의 새 국면을 예고하는 큰 뉴스였다. 박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한·미·중 사이의 최대 외교 현안인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에 대한 생각도 처음으로 언급했다.
대통령이 이런 중요한 내용을 국내 언론이 아닌 해외 언론에 먼저 밝히는 건 필요에 따라 적절히 판단할 수 있다. 다만 우리 국민들이 우리 대통령이 한국말로 한 인터뷰 내용을, 외국 언론이 영어로 보도한 것을 번역한 한국어 문장으로 접해야 하는 건 이상한 일이다. 특히 이번처럼 민감한 사안인 경우 정확한 어구(워딩)가 중요하지만, 한국 언론들은 한-일 관계와 위안부 협상에 대해 <워싱턴 포스트>가 박 대통령이 말했다고 보도한 ‘파이널 스테이지’(final stage), ‘컨시더러블 프로그레스’(considerable progress)라는 영어를 각각 “마지막 단계”, “상당한 진전”이라고 해석해 박 대통령이 말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실제론 박 대통령이 한국말로 어떻게 말했는지 모른다. 청와대는 기자들의 거듭된 요청에도 박 대통령의 한국어 원문을 완강하게 공개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미국(영어) 언론이었으니 망정이지, 다음에 사우디아라비아 언론과 인터뷰한다면 그때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막막하다.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
석진환 기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