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오전(현지 시각) 중국 베이징의 천안문 성루 위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선글라스를 쓴 채 열병식을 지켜보고 있다. 곁에서 블라디미르 푸틴(앞줄 가운데)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베이징/AP 연합뉴스
3일 베이징의 가을 하늘은 유난히 청명했다. 오전 9시30분, 중국의 상징인 천안문 성루 위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옆으로 세계 각국의 지도자와 중국 원로 지도자들이 자리를 잡았다. 시 주석의 오른편으로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첫 자리를 차지했다. 푸틴 대통령은 시 주석과 대미, 대일 전략에서 공동보조를 맞추며 밀월관계를 과시해왔다. 그 오른쪽 옆은 박근혜 대통령의 자리였다.
박 대통령은 성루에서 참석한 각국 정상들과 만나 인사를 나누는 등 천안문 ‘성루 외교’도 활발하게 펼쳤다. 박 대통령은 성루에 마련된 휴게실에서 장쩌민, 후진타오 전 국가주석, 원자바오 전 총리 등 중국의 원로지도자들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박 대통령은 열병식 분열이 진행되는 동안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와 휴게실에서 만났을 때는 “현재 노동개혁을 추진하고 있는데 슈뢰더 총리가 2003년 추진한 ‘어젠다 2010’ 개혁안이 있었고, 특히 하르츠 개혁이 귀감이 됐다”는 대화를 나눴다고 청와대는 전했다.
시 주석 왼편은 전·현직 중국 국내 지도자들의 자리였다. 부패 연루설이 돌던 장쩌민 전 주석과 시 주석의 전임자인 후진타오 전 주석이 정정한 모습으로 나란히 시 주석의 왼쪽을 차지했다. 이들의 자리는 현직 중앙정치국 상무위원들보다 앞섰다. 시 주석은 옆자리에 선 장쩌민 전 주석과 여러차례 대화를 주고받기도 했다. 원로 배제설, 갈등설을 불식하고 ‘3대 주석’이 한자리에 서면서 당의 화합을 과시하는 모양새를 연출한 셈이다. 전임 주석들 옆으로 리커창 총리를 비롯한 6명의 중앙정치국 상무위원과 전 총리들인 리펑, 주룽지, 원자바오가 자리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내외는 시 주석의 오른쪽 다섯번째, 여섯번째 자리에 위치했다. 시 주석의 부인 펑리위안은 열병식 전 천안문 뒤편 단문(돤먼) 광장에서 각국 정상들을 맞이하고 기념사진을 찍었지만 성루에는 오르지 않았다.
3일 오전(현지 시각) 중국 베이징 텐안먼광장에서 항일전쟁 승리 70주년 열병식이 열리고 있다. 베이징/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열병식은 오전 10시 “항일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70주년 기념식 개시”라는 리커창 총리의 선언으로 시작됐다. 70발의 예포가 일제히 연기를 뿜었고, 중국군 의장대의 국기 게양식과 국가 제창이 이어졌다. 감색 인민복을 입은 시 주석은 기념연설을 마친 뒤 성루 아래로 모습을 드러냈다. 중국산 최고급 승용차인 검은색 훙치 무개차를 탄 시 주석은 손을 흔들며 천안문 광장 동편 창안제에 도열한 1만2000명의 중국군과 500여대에 이르는 탱크, 미사일, 무인기 부대를 사열했다. “퉁즈먼 하오! 신쿠러”(동지들 안녕하신가, 수고합니다)라는 시 주석의 말에 꼿꼿이 도열한 병사들은 일제히 “웨이런민푸우”(인민을 위해 봉사하겠습니다)라고 화답했다. 시 주석의 무개차 사열은 부대 끝까지 약 15분 동안 이어졌다.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마오쩌둥 전 주석의 말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었다.
시 주석이 다시 성루에 오르자 본격적인 열병식이 시작됐다. 20대의 공군기가 하늘에 ‘70’을 그리며 천안문 상공을 날았고 이어 7대의 전투기가 무지개색 비행구름을 뿜어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항일 노병부대에 이어 11개 보병부대와 17개국 외국군, 탱크와 둥펑-21D, 무인정찰기 등 첨단 기계화, 미사일 부대가 차례로 성루에 선 시 주석과 각국 지도자들을 향해 경례를 올려붙이며 행진했다. 50여명으로 꾸려진 장군 부대와 여군 의장대도 참관인들의 눈길을 끌었다.
베이징/성연철 특파원 sych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