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21개 회원국 정상들이 “테러리즘의 모든 행위, 방식 및 관행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무역과 투자 자유화, 경제협력 방안 등을 모색하기 위해 꾸려진 아펙에서 경제가 아닌 안보 문제를 논의하고, 이를 공동 선언문에 담은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각국 정상들은 이날 아펙 정상회의 폐회식에서 ‘포용적 경제와 더 나은 세계 만들기: 아시아태평양 공동체를 위한 비전’ 정상선언문을 채택해 “파리와 베이루트, 시나이 반도 상공에서의 러시아 항공기, 그리고 여타 지역에서의 테러 공격으로 드리워진 암운 아래, 우리는 테러리즘의 어떤 형태와 발현양상으로 나타나든지 간에, 테러리즘의 모든 행위, 방식 및 관행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정상들은 이어 “테러리즘이 우리의 자유롭고 개방된 경제의 근저에 있는 기본가치를 위협하는 것을 허용치 않을 것”이라고 강조한 뒤, “경제성장과 번영, 그리고 기회는 테러리즘과 급진주의화의 근본원인을 다루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라고 밝혔다. 정상들은 국제협력 및 연대 강화의 필요성을 재확인했다.
특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이날 중국인이 이슬람국가(IS)에 의해 피살된 사실이 확인되자 “테러주의는 인류의 공적”이라며 “인류 문명의 최저 한계선에 도전하는 그 어떤 테러 범죄 활동도 강력히 타격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앞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한 각국 정상들도 지난 16일 발표한 ‘테러리즘 대응에 관한 G20 성명’에서 “(테러는) 인류에 대한 용납할 수 없는 모독”이라며 테러자금 차단 및 정보기술(IT) 등을 활용한 테러선동 방지, 외국인 테러 전투원의 이동을 막기 위한 국가간 정보공유, 항공보안 강화 등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미국과 중국이 주도권 힘겨루기를 벌이고 있는 역내 경제통합 논의와 관련해, 아펙 정상들은 중국이 주도하는 아태자유무역지대(FTAAP)와 미국이 주도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를 모두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논란을 피했다.
아태자유무역지대는 2004년 아펙 기업인자문위원회에서 제안된 이후, 제대로 된 논의가 이뤄지지 않다가 지난해 베이징 정상회의에서 실현을 위한 로드맵을 채택해 내년 정상회의에서 최종 결과를 보고하도록 합의한 상태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중국을 배제한 채 환태평경제동반자협정을 타결시켰다. 시진핑 주석은 이날 “경쟁적인 자유무역협정이 역내 국가의 분열을 가져올 위험이 있다”며 티피피를 겨냥한 한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티피피 회원국들과의 회담에서 조기 발효를 위해 각국의 국내 승인 절차를 서두르기로 합의하는 등 장외 신경전을 이어갔다.
미국과 중국의 이런 대립을 반영해 공동선언문은 티피피 체결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아태자유무역지대의 전 단계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의 조속한 타결을 위해 노력한다는 내용도 포함시켰다. 미국과 중국은 회의장 밖에서는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을 놓고 공방을 벌였지만 공식 의제와 선언문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한편,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정상회의에서 2025년 아펙 정상회의를 한국에서 개최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회원국의 환영으로 한국의 아펙 정상회의 유치가 확정됐다고 청와대가 밝혔다. 마닐라(필리핀)/최혜정 기자 id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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