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조선 1989년 4월호 갈무리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비선 실세 ’ 최순실 씨의 국정농단 파문으로 인해 최순실 씨의 부친인 최태민 목사와 박근혜 대통령과의 관계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최태민 목사는 영세교라는 종교를 만들어, 스스로를 ‘태자마마’라 칭했다고 한다. 이름을 여섯 번 바꾸고 결혼도 여섯 차례나 했던 인물로 알려졌다. 육영수씨가 사망한 후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던 박근혜 대통령에게 접근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최순실 씨의 국정개입은 대를 이어 내려온 행태라고 볼 수 있다. 40여 년간 이어진 최태민 일가와 박근혜 대통령의 의혹을 보도한 월간지 보도를 찾아보고 그 핵심만 추려봤다.
1. 조갑제 심층취재 박근혜 인터뷰
<월간조선>은 1989년 4월호에서 박근혜 당시 육영재단 이사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최태민 목사와의 의혹에 관해 물었다. 10.26 사건의 당사자인 김재규가 최태민과 박근혜의 관계를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고해 박근혜와 김재규의 사이가 불편했다는 내용도 함께 보도했다.
월간조선 1989년 4월호 갈무리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이 보도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최태민 목사에 대해 내린 최초의 평가가 들어 있다. 박근혜 당시 육영재단 이사장은 인터뷰에서
“최 목사님이 오히려 누명을 쓰고 있다. 그분은 정말 사심 없이 좋은 일을 하려고 했었다. 나쁜 짓을 했다면 이런 세상에서 성하게 있을 수 있었겠나”라고 말했다. 이 말은 이후 박 대통령이 지속해서 최태민 목사와 최순실씨를 두고 “순수한 마음”으로 나를 도왔다는 식으로 언급한 시초라고 할 수 있다.
백광현 수사국장이 최태민 관련 보고를 했다는 대통령 면담일지도 실었다. (사진 왼쪽 위)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보도에는 또 박근혜 이사장이 “측근들을 바꾸어야 한다”면서
“우선 정보부장(김재규)을 갈아야 한다”고 직접 (박정희 대통령) 아버지에게 얘기했다는 고백도 담겨 있다. 10.26 사건 이틀 전, 부마항쟁이 한창이던 1979년 10월24일 있었던 제안이었다.
이에 대해 조갑제 기자는 “측근들 중에서 월권과 전횡으로 가장 문제를 일으킨 건 누가 봐도 차지철이었다. 김재규가 박정희에게 박근혜와 최태민 관계를 보고해 당사자인 둘을 대질 심문 했다”고 썼다.
2. 박근혜의 2002년 한나라당 경선 당시 직격 인터뷰
<월간조선>은 그로부터 13년이 지난 2002년 4월호에서도 최태민과의 의혹에 대해 박근혜 의원과의 인터뷰한 내용을 실었다. 박근혜 의원이 한나라당을 탈당해 한국미래연합 대표로 있던 시절이었다.
박근혜 의원 쪽은 불쾌감을 숨기지 않았다.
월간조선 2002년 4월호 갈무리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박근혜 의원은 최태민 목사에 대한 석방 운동을 했느냐고 묻자 “그 양반이 감옥에 간 게 아니고 무슨 군부대에 가 있었다”며 “
문제가 있었으면 진짜 감옥에 갔든지 돈을 물어냈든지 그렇게 됐겠죠”라고 했다. 1987년 10월호 <여성중앙>과의 인터뷰에서 아버지 최태민 목사가 돈 문제로 박정희 대통령에게 조사를 받았다는 부분에 대해 “
죄가 있었다면 구속이 안 될 리 없다”라고 말했던
최순실(60) 씨와 같은 어법이다. (
▶관련 기사 : “순수한 의도”“중상모략” 29년 전 최순실 인터뷰, 박근혜 말투와 똑같다)
박근혜 의원은 이어지는 <월간조선>의 질문에 “지금 이런 식으로 저한테 질문하는
저의를 의심하고 있다”, “월간조선이 그분(최태민)과
무슨 억하심정이 있습니까”, “최 목사가 한 건이라도 감옥에 갈 만한 일을 했다든지, 피해 본 사람이 있다든지, 권력을 빙자해서 뭐 한 게 없잖아요.
그게 없으면 그다음에는 얘기하면 안 됩니다”, “
모략을 쭉 나열한다는 건 안 되죠”라는 등의 강한 표현을 썼다.
또 ‘최태민 목사의 사위(정윤회 씨)를 비서로 쓰고 있다고 들었다. 박 의원이 아직도 최 목사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얘기가 나온다’는 질문에는 “능력이 되니까 쓰는 거”라고 일축했다.
그리고 최 목사에 대해
“사이비 종교 지도자가 아니라 정식 기독교 목사였고 그렇게 이상한 사람이면 상대도 안 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3. 청와대의 골칫거리 박근혜와 최태민 밀착
<월간조선> 2005년 11월호에는 ‘박정희 전기’ 연재가 실렸다. 이 연재 글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집권 당시 최태민 목사를 딸로부터 떼어 놓으라고 지시한 기록이 나온다.
월간조선 2005년 11월호는 1977년 9월 12일 오전에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이 연재에 실려 있는 선우연 당시 공보비서관의 비망록을 보면, 박정희 대통령은 1977년 9월12일 오전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백광현 수사국장을 배석시킨 가운데 최태민 목사의 부정부패와 뇌물수수 혐의에 대해 ‘친국’을 한 뒤 선우연 비서관에게 “최태민을 거세하고 향후 근혜와 청와대 주변에 얼씬도 못 하게 하라. 구국봉사단 관련 단체는 모두 해체하고”라고 지시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선우연 비서관은 당시 이 지시를 전해 들은 박근혜가 “얼굴이 하얘지더니 낙담한 표정으로 눈물을 지었다”고 회상했다.
며칠 뒤 박정희 대통령은 선우연 비서관을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자네, 최태민을 가까이 안 하게 할 수 있나? (중략) 그간 새마음봉사단에 관해 최태민과 관련한 보고가 올라올 때마다 가슴이 찢어지듯 아팠네. 늘그막에 애들이라도 잘 돼야 내가 마음이라도 편안하지 않겠는가. 나를 좀 도와주게,”
하지만 이 연재물 머리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박 대통령은 최씨를 큰딸로부터 멀리 떼어놓으라고 지시했으나 그렇게 되지 않았다.”
월간조선 2005년 11월호 갈무리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4.박근혜 X 파일&히든카드
<신동아> 2007년 6월호는 10.26 사건 당사자인 김재규가 법원에 낸 항소이유서 내용과 최태민을 수사한 중앙정보부의 기록을 보도했다.
김재규의 항소이유서에는
“최태민이 여성봉사단을 조종하면서 이권개입을 하는 등 부당한 짓을 하는데도, 박 대통령은 김 피고인의 ‘큰 영애도 구국여성봉사단에서 손 떼는 게 좋습니다. 회계장부도 똑똑히 하게 해야 합니다’란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일도 있어서, 대통령 주변의 비위에 대하여 아무도 문제 삼지 못하고 또 대통령 자신 그에 대한 판단을 그르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박 대통령이 직접 친국까지 시행했고 최태민의 부정행위를 정확하게 파악했으면서도 근혜 양을 그 단체에서 손 떼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근혜 양을 총재로 하고, 최태민을 명예총재로 올려놓아 결과적으로 개악을 시킨 일이 있었다.”
라는 대목이 담겨 있다.
재판 과정에서 김재규 변호인은 ‘항소이유서’와 ‘항소이유 보충서’를 군법회의 측에 제출했는데, 이 두 서류에 992자 분량으로 최태민 관련 내용이 처음으로 등장했다. 김재규는 10.26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논거의 하나로 최태민 목사를 거론했다. 항소이유 보충서를 보면 이런 기록이 담겨 있다.
○ 구국여성봉사단과 관련된 큰 영애의 문제
- 구국여성봉사단이라는 단체는 총재에 최태민 , 명예총재에 박근혜 양이었는 바 , 이 단체가 얼마나 많은 부정을 저질러왔고 따라서 국민 , 특히 여성 단체들의 원성의 대상이 되어왔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아니합니다 .
-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영애가 관여하고 있다는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아무도 문제 삼는 사람이 없었고 심지어 민정수석 박승규 비서관조차 말도 못 꺼내고 중정부장인 본인에게 호소할 정도였습니다 .
- 백광현 당시 안정국장을 시켜 상세한 조사를 하게 한 뒤 그 결과를 대통령에게 보고하였던 것이나 박 대통령은 근혜 양의 말과 다른 이 보고를 믿지 않고 직접 친국까지 시행하였고 , 그 결과 최태민의 부정행위를 정확하게 파악하였으면서도 근혜양을 그 단체에서 손 떼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근혜 양을 총재로 하고 , 최태민을 명예총재로 올려놓아 결과적으로 개악을 시킨 일이 있었습니다.
신동아 2007년 6월 갈무리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중앙정보부의 보고서에도 이런 내용이 담겨 있다.
○ 중앙정보부 보고서는 최태민이 박근혜를 처음으로 만난 시점은 1975년 3월 6일이라고 밝혔다 . 보고서는 최태민이 고 육영수 여사를 거론하며 박근혜에게 접근하여 대한구국선교회를 창설한 과정에 대해 이렇게 기술했다 .
- 영혼합일법 등으로 전전하던 1975년 2월 말 경 박근혜에게 3차에 걸쳐 꿈에 ‘육여사가 나타나 근혜를 도와주라 ’는 현몽이 있었다는 내용의 서신을 발송 .
신동아 2007년 6월호 갈무리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 중앙정보부 수사기록 “최태민 부정행위 44건 ”
- 정 -관 -재계 전방위 로비 (정부 , 공기업 , 정치권 , 군 , 대기업 등을 상대로 한 전방위 로비 )
* 최태민은 기업인을 구국봉사단 운영위원으로 위촉해 이들로부터 1인당 2000만 ~5000만원의 입단 찬조비나 월 200만 원의 운영비를 받는 식으로 운영자금을 마련했다 . 이 단체는 행정기관의 지원을 바탕으로 전국에 동 단위까지 조직을 확대해 300만 명의 단원을 확보 .
* 구국봉사단을 활용한 최태민의 부정행위 의혹을 상세히 제기했다 . 이에 따르면 횡령이 14건 (2억 2135만 6000원 ), 사기가 1건 (200만 원 ), 변호사법 위반이 11건 (9420만 원 , 토지 14만 1330평 ), 권력형 비리 13건 , 이권개입 2건 , 융자간여 3건 등 그와 관련된 의혹은 도합 44건이었다 .
○ 10·26 이후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을 중심으로 정국을 장악한 신군부는 최태민 비리의혹을 수사
- 이학봉 전 의원 (1980년 당시 보안사령부 처장 )은 최근 ‘신동아 ’ 인터뷰에서 “1980년 초 합수부에서 최태민씨를 불러 수사한 뒤 강원도로 보냈다 ”라고 밝혔다 .
○ 최근 정치권에 박근혜 관련 CD가 돌았다 . 이 CD는 총 181MB 분량으로 , 1980~90년대 일간지 , 잡지 기사 18건의 전문 (전문 )을 담은 PDP파일 18개가 들어 있었다 . 이들 기사는 모두 고 최태민 목사 (1994년 사망 )의 비리 의혹 및 박근혜와의 관련성을 강하게 암시하는 내용이다 . 박근혜 측에선 ‘흑색선전물 ’이라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
○ 당시 한나라당 의원은 “박근혜 관련 의혹의 90%가 최태민이라고 한다 . 최태민 , 최태민 하는데 도대체 그가 누구인지 궁금하다 ”라고 했다 .
5. 유신 시절 이후 최태민 목사의 주요 행적
<월간조선> 2007년 7월호는 최태민의 주요 행적과 가계도, 가족 재산을 상세하게 보도했다. 또 최태민 일가와의 의혹에 대한 박근혜 당시 대선 후보의 서면 답변도 실었다.
월간조선 2007년 7월호 갈무리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보도된 최태민 가계도를 보면
○ 가계도 (박정희 대통령 집권 당시 청와대 필경사 기록 중 )
- 최태민: 1912 년 5 월 5 일 황해도 봉산군 사리원읍 출생 , 이후 경남 양산군 웅상면 삼호리로 본적 변경 .
- 1955년 5월 30일 다섯 번째 부인인 임 모 씨와의 결혼을 마지막으로 모두 5명의 부인과의 사이에 3남 6녀를 둠 .
* 첫째 부인과의 사이에 1남 , 둘째 부인과의 사이에 1남 1녀 , 셋째 부인과의 사이에는 1녀 . 넷째 부인과의 사이에서는 1남을 , 다섯째 부인과의 사이에서는 4녀를 둠 .
월간조선 2007년 7월호 갈무리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 최태민 가족재산 , 딸 · 사위 등 강남구 요지에 수백억 원대의 부동산 소유
- 최태민 목사의 다섯 번째 딸은 한때 박근혜 후보의 보좌관 역할을 했던 정윤회 씨와 200억 원대 재산 소유
* 5녀 최 씨는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대지 200여 평에 지하 2층 , 지상 7층 규모의 빌딩을 소유
* 5녀 최 씨는 2003년 7월 25일 이 땅에 지하 2층 지상 7층 규모의 빌딩을 건립해 보유 .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부동산중개업자들에 따르면 이 건물은 당시 최소한 150억 원을 호가 .
* 1985년 9월 서울 강남구 신사동 대지 108평을 임 모 씨와 공동명의로 매입 후 . 1986년 12월 이 부지에 지상 4층 규모의 빌딩을 건립했고 , 빌딩 건립 다음해인 1987년 임 모 씨의 지분 50%를 넘겨받아 최 씨가 단독으로 이 빌딩을 소유. 취재 당시 가격이 최소 50억 원에 달함 .
* 이 밖에도 1995년 5월 남편 정윤회 씨와 공동으로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서 100평 규모의 대지를 매입 . 정윤회 씨 부부는 다음해인 1996년 4월 이곳에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의 다가구용 단독주택 (19세대 )과 원룸을 신축 . 정씨 부부는 2002년 3월 이 건물을 매각함 . 건물 매각 당시 최 씨가 전체 지분의 10분의 6, 정윤회 씨가 10분의 4를 소유 . 이 건물은 매각 당시 최소 30억 원을 호가 .
- 최 목사 6녀 부부도 100억 원대 부동산 소유
* 1989년 6녀 부부와 친척으로 추정되는 자와 공동명의로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대지 176평 매입 , 1991년 9월 이 부지에 지하 4층 , 지상 9층 규모의 빌딩 신축 .
월간조선 2007년 7월호 갈무리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하지만 최태민 목사와 그 자녀들의 문제와 관련하여 박근혜 당시 대선 후보는 서면 답변을 통해 여러 의혹들을 부인했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 최태민 목사는 육영재단과 관련하여 무슨 업무를 맡은 적도 없다. 최태민 목사 자택이 어디인지는 지금도 나는 모른다.
○ 최태민 목사는 어머님께서 돌아가신 후 힘들었을 때 내가 흔들리지 않고 바로 설 수 있도록 많이 도와준 고마운 분이다.
○ 육영재단 이사장 재직 시 최태민 목사의 다섯째 딸(최순실)을 어린이회관 내 건화원 원장으로 내정한 사실이 전혀 없다. 왜 이런 말이 나오는지 짐작 가는 것조차 없다.
월간조선 2007년 7월호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그렇게, 언론이 지속해서 제기하고 박근혜 대통령이 강력하게 부인했던 의혹이 마침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되었다.
강민진 기자
mjka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