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18일 청와대에서 열린 신임 정무직 임명장 수여식에서 최재경 민정수석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수사와 관련해 변호인으로 선임한 유영하 변호사가 검찰의 중간 수사결과에 대한 반박 자료를 작성하면서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지원을 받은 사실이 밝혀졌다. 공적 기관인 청와대 참모조직이 검찰에 의해 피의자로 규정된 박 대통령 개인을 위해 ‘불법 변론 지원’을 했다는 논란이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유 변호사는 지난 20일 검찰의 중간 수사결과 발표 뒤 ‘박근혜 대통령 변호인의 입장’이라는 반박 자료를 냈다. 한글파일로 배포된 A4용지 24쪽 분량의 자료에는 박 대통령의 혐의를 적극적으로 반박하는 내용이 상세하게 담겼다. 그러나 유 변호사가 기자들에게 배포한 이 한글파일에서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흔적이 포착됐다. 한글파일에 문건 작성자로 등록된 ‘js****’라는 아이디가 2014년 8월 검찰에 사표를 내고 민정수석실로 자리를 옮긴 주아무개 행정관의 검사 시절 아이디와 일치했기 때문이다. 주 행정관은 2008년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장으로 있던 우병우 전 민정수석과 함께 일했고, 이명박 정권 말기 최재경 현 민정수석이 대검 중수부장으로 있던 시절 중수3과 검사로 일했다. 주 행정관은 야인이던 우병우 전 수석이 2014년 민정비서관으로 청와대에 들어간 뒤 그의 부름을 받았다. 주 행정관은 현재 민정수석실에서 근무하는 전직 검사 4명 중 유일하게 최재경 민정수석과 근무 인연이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최재경 민정수석은 유영하 변호사의 반박 자료 지원 행위를 민정수석실의 ‘정상적인 범위의 업무’라고 주장했다. 최 수석은 21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대통령 조사 문제로 유 변호사가 주말에 와서 면담하고 정리하는데 (민정수석실) 여기서 작업도 하고 우리도 이런저런 자료 필요하면 도와주고 한 것”이라며 “민정에서 변론 업무를 다 담당한다 하더라도 업무분장상 어차피 대통령 법률보좌를 하는 거니 문제된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래도 조심하려고 선을 긋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검찰 수사선상에 오른 대통령의 변호인 역할을 하는 건 실정법 위반이다. 대통령 비서실의 업무는 “대통령의 직무를 보좌”(정부조직법)하는 것이지 대통령 개인의 불법 행위를 변론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대통령의 업무라고 볼 수 없는 행위에 대해 대통령 변론 행위를 시켰다면 이는 직권을 남용하여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직권남용에 해당한다”고 짚었다.
최 수석은 변론 업무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때도 변호인단이 대대적으로 구성됐다. 그때 총괄적으로 했던 게 민정수석실이었고 회의·운영도 다 청와대에서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당시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한 관계자는 “그때 변호인단 사무실은 청와대 바깥에 있었고 청와대와 논의하면서 확인하고 자료 받고 할 일이 일체 없었다. 민정수석실이 나서서 변론을 준비했다는 건 말도 안 된다”고 반박했다.
모든 논란의 근원은 자신의 범죄 사실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박 대통령의 태도에서 비롯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검찰 간부는 “회장의 변호사 비용을 회삿돈으로 지출할 때 이게 회사를 위한 업무 과정에서 빚어진 범죄인지 아닌지에 따라 법원의 횡령죄 유무죄 판단이 달라진다”며 “박 대통령이 정유라씨 초등학교 친구 부모의 회사 제품을 현대차에 납품하도록 한 건 명백히 개인 비리다. 이런 부분까지 다 적법행위라고 주장하는 박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들의 인식이 문제”라고 비판했다.
김태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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