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 회원들과 시민들이 1일 오후 대구 중구 동산네거리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서문시장 화재 현장 방문에 맞춰 퇴진을 요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다. 대구/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박근혜 대통령이 1일 오후 대구 서문시장 화재현장을 방문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박 대통령이 외부 일정에 나선 것은 지난 10월27일 제4회 지방자치의 날 기념식에 참석한 이후 35일 만이다.
박 대통령은 이날 오후 1시30분께 취재진을 동행하지 않고 수행 인원도 최소화한 채 서문시장을 방문해 화재가 난 4지구 일부를 15분 정도 둘러봤다. 박 대통령은 김영오 서문시장 상인연합회장의 설명을 들으며 현장을 살폈을 뿐, 평소와 같이 상인들과 만나 악수를 하거나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김 회장과 화재 피해 지역을 돌아보면서 “서문시장 상인 여러분들은 제가 힘들 때마다 늘 힘을 주셨는데 너무 미안하다. 현재 상황에서 여기 오는 것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지만 도움을 주신 여러분들이 불의의 화재로 큰 아픔을 겪고 계시는데 찾아뵙는 것이 인간적인 도리가 아닌가 생각해서 오게 됐다”고 말했다고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이날 박 대통령의 서문시장 방문은 오전에 전격적으로 결정된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참모진들은 애초 화재가 아직 진압되지 않았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민심이 심상치 않다며 만류했으나, 박 대통령의 방문 의지가 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구시에서도 난색을 표시했다고 한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정치적 고향’인 대구에서 벌어진 재난을 두고 볼 수 없다며 방문하겠다는 뜻을 고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구 서문시장은 박 대통령이 정치적 위기를 맞을 때마다 찾았던 곳이기도 하다.
박 대통령은 15분의 짧은 방문을 마친 뒤 돌아오는 길에 차 안에서 눈물을 흘렸다고 정 대변인은 전했다. 정 대변인은 “대통령이 피해 상인들을 만나서 손이라도 잡고 직접 위로의 말씀을 전하고 싶어했는데 화재 현장에서 아직 진화작업이 계속되고 있어 상인들을 다 직접 위로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며 “현장에 계속 있으면 도움이 안되고 피해만 줄 수 있는 상황이라서 오래 머무를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전격 방문’을 두고 박 대통령이 국정 챙기기를 재개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박 대통령의 핵심 지지기반인 대구를 방문해 여론 반전을 도모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외부 행사인데도 기자단을 동행하지 않은 것 역시 매우 이례적이다.
현장의 반응은 싸늘했다. 시민 50여명은 박 대통령의 서문시장 방문에 맞춰 서문시장 옆 동산네거리에 나와 ‘박근혜 퇴진’을 외쳤다. 한 상인은 경호원들에게 둘러싸인 박 대통령을 향해 “화재민들 한 번만 보고 가세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예”라고 대답한 뒤 바로 승용차에 올라 서문시장을 떠났다. 화가 난 4지구 상인들은 취재진 앞에서 박 대통령을 비판하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대구의 85개 단체가 연대한 ‘박근혜 퇴진 대구시민행동’은 이날 긴급성명을 내어 “서문시장 방문을 과거처럼 위기 극복의 수단으로 삼으려는 것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최혜정 기자, 대구/김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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