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2일 오후 청와대 본관 접견실에서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를 접견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12일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를 만나 “독일은 과거사에 대한 진정한 반성으로 미래로 나아갈 수 있었는데 우리는 아직 그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았다”며 한-일 간 역사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데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 4시50분께 청와대에서 슈뢰더 전 총리를 만나, 슈뢰더 전 총리가 11일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거주하는 ‘나눔의 집’을 찾은 것을 언급하며 이렇게 말했다. “총리께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분들이 계신 나눔의 집을 방문해주시고 할머니들을 위로해주시고, 과거사 문제를 돌아보셨다”고 감사의 뜻을 드러낸 문 대통령은 이어 “독일은 과거사에 대한 진정한 반성으로 과거 문제를 이해하고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데 아직 우리는 그 문제들이 완전하게 해결되지 않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슈뢰더 전 총리는 “일본이 저지른 만행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께 남긴 상처를 보면서, 그 분들과 만나서 마음에 많은 감동을 받았다”며 “일본이 사과를 아직까지 하고있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할머니들 말씀이 ‘우리는 증오도 없고 복수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다만 역사에서 있었던 일들을 우리가 일본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것이 전부다’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또 “그 분들의 고통이 역사적으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슈뢰더 전 총리는 나눔의 집에서 이옥선 할머니로부터 선물받은 ‘기억 팔찌’를 착용하고 문 대통령을 만났다. 그는 11일 나눔의 집 방문 때 “할머니들이 당한 개개인들의 희생과 고통은 홀로코스트(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이 자행한 유대인 학살)와 다르지 않다”며 사죄가 없는 일본을 비판한 바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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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뢰더 전 총리는 이어 “두번째로 감동받은 것은 영화 <택시 운전사>”라며 “젊은이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민주주의를 쟁취하려고 했던 노력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언급했다. 또 “과거의 이야기도 중요하지만 현재 이야기도 중요한 것 같다. 특히 새 정부 들어 경제·사회 전반에 큰 변화와 개혁도 계획하고 계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자신도 택시운전사를 봤다고 답하며 화기애애한 대화를 이어갔다. 문 대통령은 ”위험을 무릅쓰고 광주의 진실을 알린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의 노력도 광주를 계승하게 된 큰 힘”이라며 “독일이 고비고비마다 한국 민주주의를 위해 노력해 준 것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어 “광주 민주화운동은 당시엔 좌절한 것처럼 보였지만 끝내 한국의 민주주의로 이어졌고, 최근 한국의 민주주의가 무너졌을 때, 이를 다시 일으켜 세운 촛불혁명의 원천이 되었다고 생각한다”고 문 대통령은 밝혔다.
박수현 대변인은 접견 뒤 서면브리핑을 내고, 문 대통령과 슈뢰더 총리가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사회적 대타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고 전했다. 박 대변인은 “문 대통령이 슈뢰더 전 총리의 ‘포괄적 사회노동개혁’이 독일 경제와 경쟁력을 살려내고 독일 경제를 견실하게 이끄는 원동력이 됐다고 평가했다”고 밝혔다. 이에 슈뢰더 전 총리는 “지금 문재인 정부가 노사정위원회 등을 통한 사회적 대타협을 이루려는 시도는 분명 옳은 일이며, 지금의 독일이 이러한 시도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는 “(사회적 대타협을) 추진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지만, 반드시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격려했다. 문 대통령은 “새 정부가 추진하는 최저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창출, 소득주도 성장, 포용적 성장 등은 기존의 경제기조를 바꾸는 것이어서 불안을 느끼는 국민들도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하고, “소통과 설득을 통해 그러한 불안을 해소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한 과제”라고 밝혔다고 박 대변인은 전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2일 오후 청와대 본관 접견실에서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로부터 자서전을 선물받고 있다.
이날 슈뢰더 전 총리는 문 대통령과 과거사·사회적 대타협 등에 관한 본격적인 대화를 나누기 전, 한국어로 펴낸 자신의 자서전 <게르하르트 슈뢰더 자서전: 문명국가로의 귀환>과 커피 원두를 가는 그라인더를 문 대통령에게 선물했다. 슈뢰더 전 총리는 “하노버에 있는 저의 집무실에서 언젠가 또 뵐 수 있는 날도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또 “대통령님께서 커피를 워낙 좋아하신다는 얘기를 들었다. 커피콩을 직접 갈아서 내린 커피가 최고의 맛을 낸다. 일하시다가 커피 생각이 나실 때 최고의 커피맛을 보시라고 커피를 가는 기계를 가지고 왔다”며 커피 그라인더를 건넸다. 이 그라인더는 독일 제품이 아닌 이탈리아제로 알려졌다. 슈뢰더 전 총리는 “왜 이탈리아 것을 갖고 왔냐고 물으실 것 같다”고 농담해 참석자들 간에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슈뢰더 전 총리에게 한국판 자서전 출간을 축하한 뒤, “(독일에서) 경험하신 신재생 에너지 문제 등이 우리 새 정부의 정책에서도 매우 참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접견에는 신재현 외교정책비서관, 남관표 국가안보실 제2차장, 송인배 제1부속비서관, 슈테판 아우어 주한 독일대사 등이 함께 참석했다.
정유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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