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다음주 숨가쁜 정상외교를 앞두고 있다.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로 긴장이 고조된 한반도 정세에 큰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미국·중국 정상과의 만남이 가장 중요한 무대가 될 전망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는 오는 7일 서울에서, 시진핑 중국 주석과는 10~12일 베트남 다낭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아펙·APEC) 정상회의 기간에 만난다. 아펙 일정 앞뒤로 인도네시아 방문과 ‘아세안+3’ 정상회의도 예정돼 있다.
이 가운데 한-미 정상회담이 가장 무게감 있는 일정이 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지난 6월 미국을 방문해 트럼프 대통령과는 첫 정상회담을 열었고, 9월 유엔총회 참석차 방문한 뉴욕에서 만나 북핵 공동 대응방안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을 의제로 회담을 열었다. 이번에도 주요 의제는 지난 정상회담의 연장선 위에 있다. ‘북핵 폐기 및 평화적 해결’이라는 목표와 이를 위한 ‘강력한 대북 압박과 제재’에는 인식이 일치하지만, 방법론에선 차이도 있다. 문 대통령은 대북 압박과 제재가 결국 대화를 위한 수단임을 강조하나, 트럼프 대통령은 “군사적 옵션”과 “대화”를 정신없이 오간다. 문 대통령은 지난 1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한반도 평화를 위한 5대 원칙을 밝혔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 가운데 우리 정부가 적극적으로 남북관계를 풀어가려는 시도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시진핑 체제 2기 출범과 함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갈등을 넘어 봉합 수순으로 들어간 한-중 관계도 다가오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시험대’에 오를 수 있다. 중국과 관계 정상화를 위해 약속한 ‘사드를 추가 배치하지 않고, 미국의 미사일 방어망에 참여하지 않고, 한·미·일 군사동맹을 하지 않는다’는 정부의 ‘3노 약속’을 두고 미묘한 신경전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일단 “지역 안정에 좋은 일”이라며 환영 입장을 밝혔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일 공조를 강조하며 대중 압박·견제에 동참할 것을 요구할 경우 정부로선 난감한 처지에 몰릴 수 있다.
정상회담에서 예견되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북핵 문제를 한-미 자유무역협정과 연계해 미국 쪽에 유리한 방향으로 끌어가는 상황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미국에서 한-미 에프티에이 폐기 가능성이 흘러나오던 때에도 “폐기하더라도 우리 경제에 큰 타격은 없다”고 했지만, 북핵 문제와 연계될 경우는 얘기가 달라질 수 있다.
아펙 정상회의(10~12일) 중 예정된 한-중 정상회담은 한-미 정상회담보다 문 대통령의 부담이 한결 덜할 전망이다. 사드 문제로 시작된 양국 간 갈등이 최근 발표된 ‘한·중 관계 개선을 위한 양국 간 협의’ 이후 해빙 분위기를 맞았기 때문이다. 한-중 정상회담이 ‘모든 분야의 교류 협력을 정상적인 발전 궤도로 조속히 회복시켜 나가기로 한 합의 이행의 첫 단계 조치’이고, 양국이 사드 문제를 ‘봉인’하기로 해 정상회담 의제로 올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북핵 해법 등을 두고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시 주석이 중국의 기존 입장을 다시 환기할 수도 있다.
문 대통령은 12월 방중과 내년 2월(평창겨울올림픽) 시 주석 답방이라는 방안에 대해 중국의 확실한 답변을 얻으려 힘을 쏟을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다음 겨울올림픽이 2022년 베이징에서 열리기 때문에 다음 개최국의 정상이 평창에 오는 게 자연스럽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김보협 노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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