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7일 국가인권위원회에 “뼈아픈 반성과 함께 대한민국을 인권 국가로 만들기 위해 새로운 다짐으로 새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정부 시절 사실상 유명무실했던 인권위의 위상을 바로 세울 것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취임 뒤 처음으로 이성호 국가인권위원장, 이경숙 상임위원 등 인권위 관계자들과 오찬을 겸한 특별업무보고를 받으면서 “국가인권위가 존재감을 높여 국가 인권의 상징이라는 위상을 확보해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고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이 전했다. 이날 인권위 특별보고는 2012년 3월 이명박 정부에서 이뤄진 특별보고 이후 5년9개월 만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엔 단 한차례도 특별보고가 이뤄지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인권위가 인권 기본법, 인권 교육지원법 등 법 제도 마련에 주도적으로 나서달라”며 “국제기준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권고를 많이 해달라”고 주문했다. 그는 “사형제 폐지나 양심적 병역거부 인정과 같은 사안의 경우, 국제 인권 원칙에 따른 기준과 대안을 제시하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군 인권 보호와 관련, 군 인권 보호관 제도가 본격적으로 설치되기 전이라도 인권위 내에 군 인권 보호를 위한 조직을 신설하는 게 좋겠다”고 제안했다.
이 위원장은 “1987년 이후 30여년간 국내 인권 환경은 급속도로 변화해 지금은 새로운 인권 환경에 최적화된 인권 보장 체계 구상이 필요하다”며 △기본권 강화와 지방분권을 골자로 한 헌법 개정 △인권 기본법, 인권 교육지원법, 차별금지법 등 인권 관련 기본법 3개 완비 △사회적 약자의 인권 보장과 차별 배제, 혐오에 관한 개별 법령 정비 등을 보고했다. 문 대통령은 인권위의 권고 이행과 관련해 “각 정부 부처가 이행할 수 있도록 기관 평가에 반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정당한 이유 없이 권고를 이행하지 않으면 적극 알려달라. 이를 챙기겠다”고 덧붙였다.
인권위는 김대중 정부였던 2001년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구현하고 민주적 기본질서 확립에 이바지한다”는 목적으로 출범했다. 참여정부를 거치며 한때 아시아-태평양 지역 인권기구의 모범으로 꼽혔던 인권위는 이명박 정부 출범 뒤 후퇴를 거듭했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 당시 강경 진압을 일삼았던 경찰과 대립각을 세운 게 결정적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인권위 조직을 축소하는 한편, 인권 분야의 전문성과 경험이 전무한 현병철 전 인권위원장을 임명했다. 그동안 인권위는 당연직으로 맡아야 할 세계 인권기구 연합체, ‘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조정위·ICC) 의장직 출마를 포기하고 부의장 지위도 잃었다. 인권위는 ‘암흑기’ 동안 정연주 <한국방송> 사장, <문화방송> ‘피디(PD)수첩’ 제작진 기소 등 수사권 남용에 침묵했고, 용산 참사와 세월호 참사 등 국민 생명권이 침해된 사건에도 눈감아 왔다. 이 사이 인권위 권고에 대한 정부기관의 수용률도 바닥을 치게 됐다.
김보협 허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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