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1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 2차 회의에서 머리 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남북 정상회담 준비위원회에서 ‘남-북-미 3국 정상회담’ 성사 가능성을 내비치며, 앞으로 이어질 회담들을 통해 한반도 핵과 평화 문제를 완전히 끝내야 한다고 밝혔다. 4월말 남북 정상회담과 5월 북-미 정상회담 이후 문 대통령이 그리고 있는 한반도 평화정착 구상의 일단을 드러낸 셈이다. 두 회담을 통해 비핵화 문제를 포함한 한반도 정세에 돌파구가 마련되면, 한반도에서 냉전체제를 걷어내고 평화 공존을 제도화하기 위해 한국전쟁의 공식 종전을 선언하고, 나아가 경제협력과 외교관계 등을 아우르는 ‘북-미 관계 정상화’를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문 대통령은 이날 회의에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를 위한 미국의 구실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한반도 평화 정착은 남북 사이의 합의만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미국의 보장이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특히 “그러려면 북-미 관계가 정상화해야 한다. 더 나아가 북-미 사이의 경제 협력까지 진전돼야 한다”며 정상회담 준비위가 이런 목표와 전망을 갖고 회담 준비에 임해달라고 각별히 주문했다. 현 정전체제에선 남북이 종전선언을 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한다고 해도, 미국을 비롯한 한반도 주변국의 보장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따라서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나아가 북-미 간 적대관계 청산과 경제협력은 물론 북-미 수교까지도 염두에 둔 큰 그림 속에서 북한에 대한 체제안전 보장을 제도화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평화체제가 굳어진다고 보는 것이다.
문 대통령의 이런 구상은 2007년 노무현 정부 당시 문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 추진위원장을 맡아 이끌어낸 ‘10·4 선언’(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을 보면 명확해진다. 2000년 첫 남북 정상회담의 결과물인 ‘6·15 선언’ 계승을 시작으로 모두 8개항으로 이뤄진 10·4 선언의 4항에서 남과 북은 “현 정전체제를 종식시키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직접 관련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한반도 지역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해 나가기로” 합의한 바 있다.
‘3자 또는 4자 정상’은 정전협정 서명 당사국인 미국과 중국·북한, 또는 전쟁 당사국인 남과 북, 미국과 중국을 뜻한다. 따라서 남북에 이어 북-미 정상회담까지 순항한다면, 남-북-미 3국 정상들이 만나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체제를 위한 다음 수순을 논의할 수 있을 전망이다. 여기에 중국까지 가세하면 한국전쟁에 종지부를 찍는 종전선언과 함께 동북아에서 다자간 평화체제를 추동시켜 낼 수도 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준비위에서 목표와 비전이란 표현을 많이 썼다”며 “너무 당면한 목표만 실무적으로 하지 말고 눈을 멀리까지 바라보면서 일을 해나가자는 취지였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북-미 간 경제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비핵화의 진전에 따라 대북 제재가 해제되고 북한이 이른바 ‘정상국가’로서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기 위해선, 무엇보다 북-미 수교와 함께 북한의 대외 경제활동을 가로막고 있는 각종 미국 국내법의 개폐가 이뤄져야 한다. 이를 통해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 가입이 선행돼야 북한도 개혁·개방으로 나아갈 수 있다. 과거 중국과 베트남 역시 미국과 수교하고 두 기구에 가입한 이후 본격적으로 개혁·개방정책을 추진할 수 있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문 대통령이 “이번 남북 정상회담 합의문에 지난 두차례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기본 사항을 다 담아 국회 비준을 받도록 준비하라”고 지시했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남북관계의 지속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남북 간 합의사항의 국회 비준을 통한 ‘제도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해왔다. 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그간의 합의사항과 이번 회담의 내용을 충실히 담아내면, 독일 통일의 주춧돌이 됐던 ‘동서독 기본조약’과 마찬가지로 법적 구속력을 갖는 ‘남북 기본조약’이 만들어지는 셈”이라고 짚었다.
김보협 정인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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