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이 13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자산운용 대표이사 간담회를 마친 뒤 차에 오르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문재인 대통령이 13일 야당들로부터 사퇴 압력을 받고 있는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의 거취에 관해 이례적으로 직접 입장을 밝힌 것은, 임명을 철회할 사유가 분명해질 때까지는 김 원장을 유임시키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이른바 ‘조건부 신임’인 셈이다. 김 원장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됐고 청와대가 의뢰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유권해석도 다음주께 나올 것으로 점쳐지는 만큼 “객관적인 판정”이 나온 뒤 민심에 따라 김 원장의 거취를 판단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이 자신이 행사한 인사권과 관련해 입장문을 내어 국민들과 직접 소통하는 방식을 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청와대 참모들은 이날 “대통령의 입장문을 있는 그대로 봐달라. 대통령이 김 원장 문제뿐만 아니라 인사에 대한 고민을 담담하게 밝힌 것”이라고 전했다.
‘김기식 금융감독원장 관련 입장문’에 드러난 문 대통령의 생각은, 현재까지 드러난 김 원장의 국회의원 시절 처신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아 도덕적인 비난을 살지언정 해임에 이를 정도로 중하지는 않다는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당시 국회의원들의 관행에 비추어 도덕성에서 평균 이하라고 판단되면 사임토록 하겠다”고도 했다. 법과 제도, 원칙을 강조해온 문 대통령이 김 원장에게 해임이라는 중징계를 내리려면 그만한 무게의 귀책사유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있느냐고 되물은 것이라고 청와대 관계자들은 전했다.
문 대통령은 앞으로 있을 인사에 대한 고충도 함께 토로한 것으로 풀이된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날 <한겨레>와 만나 “문 대통령이 임명을 철회하려면 어떤 기준이 있어야 한다. 분명한 기준도 없이 김 원장을 해임할 경우 비슷한 문제가 있는 전·현직 국회의원은 능력 여부를 떠나 앞으로 정부에서 일할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또 김 원장 거취 논란을 ‘개혁 대 반개혁’의 구도로 보는 시각도 분명히 했다. 문 대통령은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한 분야는 과감한 외부 인사 발탁으로 충격을 주어야 한다는 욕심이 생기지만, 과감한 선택일수록 비판과 저항이 두렵다”고 했다. 김 원장이 금융개혁의 적임자이고, 그 때문에 기득권 세력의 저항도 심하다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이런 메시지를 두고 “문 대통령이 자신들의 불법에는 ‘평등과 평등’을 운운하고 있다”(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갑질의 경중을 논해 형평성을 따진다는 것이 대통령 입에서 나올 말인가?”(김철근 바른미래당 대변인) 등의 비판이 나왔다. 금융권을 엄하게 감독해야 할 사람으로서 누구보다 높은 도덕기준이 요구되는 자리에 ‘평균’을 들이대는 건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문 대통령 또한 김 원장을 끝까지 안고 갈 생각은 아니라는 해석도 나온다. 문 대통령은 이날 “야당의 비판과 해임 요구는 수긍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면서도 “궁극적으로 국민들의 판단에 따르겠다”고 말했다. 선관위의 유권해석 등에도 김 원장 사퇴 여론이 수그러들지 않을 경우엔 민심을 거스르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이날 오후 청와대에서 문 대통령을 만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김 원장 임명을 철회하라는 요청에 대해 문 대통령의 즉답은 없었지만 내가 받은 느낌은 김기식 원장은 집에 보내는 게 아닌가, 현장에선 그렇게 느꼈다”고 말했다.
김보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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