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4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2019년도 제1차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체회의를 주재하며 개회를 알리는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왼쪽부터 서훈 국가정보원장, 노영민 비서실장, 문 대통령,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김유근 국가안보실 제1차장.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4일 북-미 대화의 ‘궤도 이탈 방지’에 정책의 우선순위를 둔 것은, 이번 북-미 정상회담 합의 불발로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특히 “무너지는 것은 순간”이라며 위기에 빠진 북-미 대화의 ‘골든타임’을 우리 정부가 나서 붙들어야 한다는 뜻을 강하게 나타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주재한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중재안을 마련하기 전에 보다 더 급선무는 미국과 북한 모두 대화의 궤도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며 “인내심을 갖고 (북-미가) 이탈하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자”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이 북한이나 미국 쪽으로부터 구체적인 ‘이상징후’를 보고받았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그동안 북-미 간 대화에 낙관적인 기조를 유지한 문 대통령이 이런 발언을 한 것 자체가 ‘인식의 변화’라고 볼 수 있다. 이날 국가안전보장회의가 이례적으로 100여분 동안 진행된 것도 상황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이날 회의에서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개성공단 및 금강산관광 재개 방안을 마련해 미국과 협의하겠다”고 밝혔고,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3월 중 남북군사회담 개최를 통해 지난해 9·19 군사분야 합의에 대한 이행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보고했다. 북한과의 접촉면을 넓히면서 남북관계를 지렛대로 정세 관리에 주력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개성공단·금강산관광이 재개되면 이번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민생 분야’의 제재 완화를 미국에 적극적으로 요구했던 북한 입장에선 일정 정도 ‘숨통’이 트이는 측면이 있을 수 있다. 다만, 하노이 회담 뒤에도 미국 쪽이 추가적인 제재는 하지 않겠지만 제재 이행은 더욱 강화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어 쉽지는 않은 상황이다.
3월 중 남북군사회담 개최 추진은 북-미 정상회담 합의 이후로 미뤄졌던 9·19 군사합의의 이행 속도를 높여 군사적 긴장완화를 계속 추진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비무장지대(DMZ) 남북 공동유해발굴과 한강하구 자유 항행 등 군사 의제를 논의하면서 남북 간 군사 분야의 끈을 유지하면 최소한의 상황 관리는 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은 2차 북-미 정상회담의 성과도 적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그는 “영변 핵시설의 완전한 폐기가 논의돼 가시권에 들어왔다”며 “이 시설이 전면적으로 완전히 폐기된다면 북한 비핵화는 되돌릴 수 없는 단계로 접어든다고 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북-미 사이에 부분적 경제 제재 해제와 북한 내 미국 연락사무소 설치가 논의된 점을 들어 “대화의 큰 진전이자, 양국 간 관계 정상화로 가는 중요한 과정으로 큰 의미를 가진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북-미 두 정상이 서로를 비난하지 않고, 긴장을 높이지 않고 변함없는 신뢰를 표명하며 지속적인 대화로 북핵 문제 타결 의지를 분명히 함으로써 이번 회담이 더 큰 합의로 가는 과정이라는 기대를 가질 수 있게 됐다”고 했다.
문 대통령이 지난해 2차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처럼 김 위원장을 직접 만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날 국회의장과 여야 5당 대표의 모임인 초월회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과 (북-미 회담 직후) 25분 동안 전화통화를 하면서 문 대통령에게 7번이나 ‘중재 역할을 해달라, 김 위원장의 진의를 파악해달라’고 했다”고 말했다고 참석자들이 전했다. 이른 시일 안에 한-미 정상회담을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지난해 북-미 정상회담 성사 과정처럼 북-미를 오가는 특사 구실을 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성연철 송경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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