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7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통화를 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한국과 미국 정상이 인도적 차원의 대북 식량 지원 필요성에 공감함에 따라 청와대와 정부가 8일 구체적 방안 마련에 착수했다. 지난 2월 베트남 하노이 2차 정상회담 뒤 교착상태에 빠진 북-미 대화를 식량 지원을 매개로 재개해보겠다는 한·미 정상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밤 문재인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한국이 인도적 차원에서 북한에 식량을 제공하는 것은 매우 시의적절하고 긍정적인 조치가 될 것이라고 평가하고 지지한다”고 말했다. 두 정상은 최근 세계식량계획(WFP)과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발표한 북한 식량 부족 실태 보고서에 관해 의견을 나누며 인도적 지원 필요성에 공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 기구는 올해 북한에 159만톤가량 식량이 부족할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은 그동안 의약품 등 극히 일부 품목을 제외한 식량 등을 지원하는 것에 부정적이었지만, ‘대북 압박과 인도적 지원을 연계하지 말라’는 국제사회와 인도적 지원 단체들의 요구에 부담을 느껴온 것으로 알려졌다.
두 정상의 뜻이 확인됨에 따라 청와대와 정부는 인도적 식량 지원을 공식화하고 실행 방안 마련에 들어갔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어떤 품목을 어떤 방법으로 얼마나 지원할지 등 모든 사안은 이제 논의에 들어가야 하는 단계여서 확정된 것은 없다”며 “두 유엔기구에서 (북한의) 어린이와 가족이 지금 어려운 시기를 견딜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한 만큼 우리도 그 정도로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국제적 기구를 통해 지원할 것인지, (한국이) 직접 지원할 것인지 등도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이상민 통일부 대변인도 “국제사회와 긴밀히 협력하면서 북한 주민에 대한 인도적 식량 지원을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지원 과정에서 국제사회와의 협력은 물론 한반도 주변 관련국들과의 공감대 형성에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방침이다.
청와대와 정부는 식량 지원을 계기로 북-미 비핵화 대화의 물꼬가 트이길 기대하고 있다. 특히 지난 4일 한·미가 북한의 단거리 발사체 발사에 절제된 반응을 내놓은 데 이어, 인도적 차원의 식량 지원까지 재개하면서 북한에 대화 테이블 복귀를 설득할 명분을 확보했다는 게 청와대 쪽 판단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남·북·미 사이 대화 동력을 유지하는 것”이라며 “북한의 기대엔 못 미치겠지만 현실적 접근으로 향후 대화의 실마리를 마련하겠다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방한한 스티븐 비건 미국 대북특별대표는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청와대 관계자들을 만나 대북 식량 지원 문제를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성연철 노지원 기자,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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