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이 통화 내용을 공개했던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이 23일 오전 국회 원내대표실에서 열린 청와대 특별감찰반 진상조사단 회의에 참석해 눈 주위를 만지고 있다. 연합뉴스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이 3급 비밀인 한-미 정상 통화 내용을 고교 후배인 외교관에게서 전달받아 공개한 것과 관련해 청와대가 엄정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한국당은 강 의원이 ‘공익 제보’를 받아 청와대의 ‘굴종 외교’를 폭로한 것이라고 두둔했지만, 한국당 내에서도 이런 대응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23일 “대외 공개가 불가한 기밀로 분류되는 한-미 정상 통화 내용이 유출된 것을 확인했고, 유출자 본인도 이를 시인했다”며 “해당 외교부 직원의 인사 조치와 함께 외교부가 조만간 감찰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청와대와 외교부는 지난 9일 강효상 의원이 기자회견을 열어 “7일 한-미 정상 통화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5월 하순 일본 방문 직후 잠깐이라도 한국을 들러달라고 했다”고 주장한 뒤 감찰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강 의원의 고교 후배인 주미 한국대사관 소속 외교관 ㄱ씨가 보이스톡을 이용해 통화 내용을 유출한 것으로 파악했다. ㄱ씨는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실 행정관으로 일했다. 정부는 ㄱ씨가 지난 3월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존 볼턴 미국 국가안보보좌관과의 회동을 타진한 사실 등 외교기밀을 두 차례 더 유출한 것으로 보고 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형법 113조는) 외교상 국가기밀을 누설한 사람이나 이를 목적으로 기밀을 탐지·수집한 사람은 5년 이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도록 돼 있다”며 “특히 강 의원이 ㄱ씨에게 정상 간 통화 내용을 달라고 한 것은 수집·탐지 활동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그는 “외교부에서 강 의원과 ㄱ씨를 고발하고 수사의뢰하는 수순을 밟게 될 것”이라며 “청와대도 이번엔 (팩트가) 딱 드러난 만큼 엄정하게 조처해야 한다는 기류”라고 말했다. 비핵화 협상의 고비마다 민감한 한-미 양국의 논의 내용을 외교관이 유출하고 이를 한국당과 보수언론이 정쟁거리로 활용하는 행태를 이참에 뿌리뽑겠다는 것이다.
강 의원은 이날 한국당 진상조사단 회의에 나와 “국민 알권리 확보 차원”이라고 주장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굴욕 외교의 실체를 보여준 공익적 성격이 강하다”고 했다. 하지만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장인 윤상현 한국당 의원은 페이스북에 “당파적 이익 때문에 국익을 해치는 일을 해서는 결코 안 된다”며 “한-미 정상회담과 관련한 외교기밀 누설 사태를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으로서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성연철 정유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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