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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대통령실

홍범도 장군 유해 올해 국내에 돌아온다

등록 2020-03-01 10:31수정 2020-03-03 09:15

봉오동 전투의 영웅 유해 봉환 숙원 해소
문재인 대통령이 1일 발표한 ‘봉오동 전투의 영웅’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은 정부의 숙원이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4월 카자흐스탄 방문 때 독립유공자인 계봉우, 황운정 지사의 유해를 봉환하면서 홍 장군의 유해 봉환도 추진했다.

하지만 홍 장군의 유해는 지난해 돌아오지 못했다. 분단의 현실과 장군의 묘역이 여전히 동포 사회의 구심점 구실을 하고 있다는 점이 작용했다. 정부는 당시 “홍 장군의 유해도 봉환할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이 1일 종로구 배화여고에서 열린 3.1절 기념식에서 애국가를 부르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1일 종로구 배화여고에서 열린 3.1절 기념식에서 애국가를 부르고 있다. 연합뉴스

장군의 유해 봉환은 1992년 우리나라가 카자흐스탄과 국교를 맺은 뒤부터 추진됐다. 김영삼 정부는 1995년 장군의 유해 봉환을 추진했지만, 북한은 카자흐스탄 정부에 장군의 고향이 평양이란 점을 들어 연고를 주장한 것으로 알려진다. 카자흐스탄 정부나 동포 사회는 남북 사이에서 장군 유해 봉환에 선뜻 나서기 어려웠다. 장군이 여전히 카자흐스탄 동포 사회에서 정신적 구심점 구실을 하고 있다는 점도 있었다. 고려인들은 크질오르다에 장군의 묘역을 조성하고 장군을 민족 지도자로 기린다. 카자흐스탄 정부 역시 1994년 ‘홍범도 장군 거리’를 선포할 정도로 장군을 존중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유해 봉환에 가장 동의가 필요한 장군 후손들은 모두 세상을 떠난 점도 어려움으로 작용했다.

홍 장군은 1868년 평양에서 태어나 의병 투쟁에 몸을 던졌다. 대한독립군 총사령관에 올라 간도와 연해주에서 일제와 싸웠다. 3·1 독립운동 이듬해에는 독립운동에서 가장 빛나는 승리 가운데 하나로 일컬어지는 봉오동 전투를 이끌었다. 하지만 장군은 1937년 소련 스탈린 정권의 정책 탓에 연해주에서 크질오르다로 강제로 이주당했다. 장군은 이후 움막집에서 살며 고려극장 경비 생활로 생계를 이을 만큼 힘든 말년을 보내다가 75살로 숨졌다. 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성연철 기자 syc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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